촛불데모와 데모크라티아와 이승만과 박정희 일반비평집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인 유재원이라는 사람의 ‘데모크라티아’를 읽었다.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알고있는 데모크라티아의 기원을 추적한 역작이었다. 촛불데모 옹호는 저자의 편견 탓으로 돌리더라도 이승만과 박정희를 폄하하는 똥칠은 아쉬웠다. 메일을 보냈으나 일주일이 넘도록 답이 없다. 이번 포스팅을 보고 덧글을 달지도 모르겠다는 바램을 가져 보지만, 기대는 하지 않는다. 저쪽 사람들의 ‘아니면 말고’ 성향을 알기 때문이다. 좌파는 잠재적인 비판자인 문사철을 키우지 않는다. 호라티우스 이래 자신들의 후원자인 우파에겐 이를 갈면서도 자기 밥그릇 걷어차는 좌파를 빨아대는 문사철의 삐딱 근성은 불가사의하다. 아래는 유재원에게 보낸 메일이다.


귀하가 쓰신 ‘데모크라티아(한겨레출판)’를 밑줄 쳐가며 정독했습니다. 희랍과 라틴 고전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좋은 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희랍 철학과 문명에 국한해서 서술하고 끝냈더라면 더욱 좋았을 텐데 일반적으로 수용하기 힘든 정치적 견해를 표명해서 몹시 아쉬웠습니다. 굳이 서술하지 않아도 좋을 촛불시위라는 최근의 정치적 사건에 대한 잘못된 견해는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삼가해야 할 금도를 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동년배인 분이므로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에 겪은 이승만은 몰랐다고 해도 박정희 시대는 충분히 경험했을 텐데 굳이 편향된 의견을 끼워넣어야 했는지 참으로 의문입니다.

모든 시민의 고양된 정치의식(에피스테메)이 전제되는 데모크라티아를 다루면서도 선동적인 촛불시위를 옹호하는 태도는 모순으로까지 느껴졌습니다. 탄핵 시위 내내 박원순 시장의 허가가 필요한 광화문광장 사용은 좌파에만 허용되고 우파는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시민세력이 정치권력과 연계하고 기획하는 시위라면 박근혜, 문재인은 물론 그 어떤 대통령도 버티지 못했을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연계설 또는 중국 유학생과 조선족 동원설까지 불거진 이유는 자발적이라 하기엔 너무도 조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촛불시위를 지휘한 2700개 시민단체의 정체를 몰랐다는 변명으로는 부족합니다. 지식인이라면 자신의 글에 대해 책임질 줄 알아야 합니다.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평가에 이르러서는 인내의 한계를 요구합니다. 촛불시위를 옹호하는 태도에서 전직 대통령의 공과를 공평하게 다루리라는 기대는 접고 읽었지만,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승만 대통령이 ‘친일파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대가로 권력을 잡았다(230쪽)’고 기술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승만 관련서적을 아무리 읽어도 ‘친일파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대가로 권력을 잡았다’고 평가할 만한 정치적 행위나 사건을 찾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은 온통 적화된 유라시아 대륙의 끄트머리에 자그마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국하고 지켜낸 공적만으로도 독재라고 뭉뚱그려서 비난되는 모든 과오를 덮고도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는 영웅이 되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말할 정도로 세속적 평가에 초연했습니다. 그는 진정한 위버멘쉬요 초인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 1263b13에서 갈파한 ‘재산이 있어야 자유로움과 데모크라티아도 가능하다’는 정치철학을 박정희는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박정희는 너무 일찍 등장한 우리에겐 과분한 초인이었습니다. 배은망덕한 대한민국 민중에 욕먹을 바에는 차라리 김일성에 의해 공산화되거나 아프리카의 식민 경험국처럼 가난에 시달리도록 방관했어야 한다고 말하면 귀하는 동의하겠습니까? 박정희 아니어도 경제성장이 가능했다는 한때 유행했던 자본주의 맹아론을 거론하시겠습니까?

듣기 거북하겠지만 귀하의 이승만과 박정희 평가는 공맹 시대의 회귀를 외쳤던 의암 류인석의 기괴한 세계관을 넘지 못했습니다. 하인의 등에 엎혀 서당에서 춘추를 외우지만, 사나운 개를 만나면 하인을 던져두고 도망가는 글방 도련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식인들이 훌륭한 책을 쓰고도 자기 책에 오물을 묻히지 못해 안달하는 태도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적 인물이나 사실에 대한 평가는 적어도 100년이 넘어야 하며 엄격하게 말하면 100년이 넘어도 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는 역사에는 상상 외의 숨은 사실이 많기 때문입니다. 말투가 지나치게 신랄해서 참기 어려우시겠지만, 사람은 배울수록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