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글(http://mediocris.egloos.com/11331912)에서 노동력 재생산, 생존임금, 생활임금이 마르크스 이론에 기초한 허위개념이라는 점을 밝혔다. 이러한 글에 대한 반응은 뻔한다. 지겹고 어렵다는 것이다. 좌파는 집요하게 마르크스 떡밥을 깔고 감성적으로 선동하는데 우파는 지겹다며 외면한다. 불편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마르크스와 관련 없고 만만해 보이는 시장균형임금이라는 개념은 어떨까? 시장균형임금이 과연 최저임금의 기초가 될 수 있을까? 위키백과의 도입배경 항목과 조순 외 3인 공저의 경제학원론 제10판에 기술된 최저임금의 정의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능력을 존속(存續)하고 가족을 지속적(持續的)으로 부양(扶養)함으로써 노동력을 재생산(再生産)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이 생존임금(生存賃金 subsistence wage)이다. 그리고 생존임금에 더해 자식들의 교육과 최소한의 문화 수준을 누릴 수 있는 수준으로 상승한 임금은 생활임금(生活賃金 living wage)이다. 노동시장에서 노동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자유롭게 결정된 임금이 노동자의 생활임금이나 생존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국가는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를 위하여 정부가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의 최저 수준을 시장균형임금 이상의 일정 수준으로 보장하기 위해 설정한 임금이 최저임금이다.
우선 시장(market)이라는 개념부터 살펴보자. 조순 외 3인 공저 경제학원론은 시장을 ‘재화와 서비스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모여서 거래하는 데 필요한 제도나 기구’라고 정의하지만, 이것으로는 물리적 장소가 아닌 시장균형임금에서의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래서 제임스 과트니(James Gwartney) 교수는 Economics 제9판에서 시장을 ‘경제참여자들의 구매와 판매 의사결정으로 발생된 힘들이 만드는 추상적 개념(An abstract concept that encompasses the forces generated by the buying and selling decisions of economic participants)’이라고 정의한다.
네이버가 채용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사전은 추상적이란 ‘1. 어떤 사물이 직접 경험하거나 지각할 수 있는 일정한 형태와 성질을 갖추고 있지 않으며 2. 구체성이 없이 사실이나 현실에서 멀어져 막연하고 일반적인’이라고 정의한다. 추상적 개념이란 한마디로 실체 없는 허구적 개념이란 의미다. 경제학에서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시장균형임금이라는 개념은 실제로는 경험할 수도 없고 현실적이지도 않지만, 막연하게 통용되는 상상된 개념에 불과하다. 요컨대 시장은 허구(conceived structure)라는 소리다.
다음 시장균형임금에서의 균형이란 개념을 살펴보자. 위에서 언급된 제임스 과트니 교수는 균형을 구매와 판매자의 의사결정에서 유발된 ‘충돌하는 두 힘들이 조화를 이룬 상태(A state in which conflicting forces are in balance)'라고 정의했다. 대런 에이스모글루(Daron Acemoglu) 교수는 그의 Economics(2015) 13쪽에서 ‘균형이란 모두가 동시에 최적화된 결정을 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행동을 바꿔 편익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태(In equilibrium, everyone is simultaneously optimizing, nobody perceives that they will be benefit by changing their behavior)’라고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막연히 안정된 상태로 알고 있는 균형 또한 인지영역 외부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준구 교수의 미시경제학 제6판 14쪽 예시처럼 균형에는 안정적 균형(stable equilibrium)도 있지만, 불안정한 균형(unstable equilibrium)도 있다. 안정적 균형상태에서는 교란 요인이 작동하더라도 금새 본래의 안정을 회복할 수 있지만, 불안정한 균형상태에서는 약간의 교란 요인만으로도 혼란이 가중된다. 노동시장은 기본적으로 불안정한 시장이다. 노동력(labor force) 자체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P.B. Doeringer 1971). 여기에 인위적 교란 요인인 최저임금이 작동되면 불균형(disequilibrium) 상태가 된다.
최저임금은 에이스모글루 교수가 지적하듯(상게서 549쪽) 승자와 패자의(winers and losers) 게임이다. 가상의 시장균형임금 3000원에 2400명이 고용된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4300원으로 인상되었을 때 2000명의 선택된 승자(피고용자)들은 탈락한 패자(실업자) 400명의 임금을 독점하게 된다. 실업자로 전락한 피고용자들의 임금 EhEgEo와 기업이 고용을 축소한 임금 EfEhEo를 합한 EfEgEo라는 삼각형은 4300-3000-Ef-Eg라는 피고용자들이 독식하는 사각형의 몫이다. 1700원에도 고용될 의사를 가지고 있는 실업자들의 몫 3000-1700-Eg-Eh을 선택된 피고용자들이 가져간 것이다.
시장균형임금은 허구인 시장과 불안정한 균형을 조합한 허위개념이다. 시장균형임금을 실체처럼 취급해 구체적 액수를 설정하고 그것을 초과하는 최저임금을 강제한다면 가뜩이나 불안정한 노동시장의 혼란은 필연적이다. 그것이 바로 실업자의 증가와 승자와 패자 사이의 빈부격차다. 실업자가 증가되고 빈부 격차가 심해져도 좌파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최저임금 정책의 실패를 부자와 대기업 탓으로 돌린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결로 왜곡시켜서 국민을 속이기, 그것이야말로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좌파정권의 집권 전략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좌파정권과 결탁한 노동귀족 집단인 민노총 소속 대기업 정규직들의 임금인상 미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덧글
기업은 사람을 고용하지 못해서 망하고
노동자는 인건비가 올라서 취업을 못해서 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