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좌파들의 악마논리 한국현대사

야당대표의 예방을 빌미로 백선엽 장군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한민족 최고의 악질 친일파는 북괴 김성주(김일성)다. 북괴 김성주는 패전 일본을 잿더미에서 다시 일으킨 자이다. 소련의 괴뢰정권 북한이 친일파를 청산했다는 주장도 거짓이다. 친일청산은 권력투쟁을 감추기 위한 선전이었을 뿐 일본 헌병 보조원 출신인 동생 김영주를 권력 최상층으로 밀어 올렸고 군대를 비롯한 각계 각층에 친일파를 기용했으며 심지어 기술자를 비롯한 다수의 일본인을 ‘유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는 북한 김일성을 보천보의 영웅이요, 항일 독립투사로 날조하고 백선엽을 친일파로 매도한다. 북괴 김성주는 보천보 제6사장 김일성과는 아무 관련 없는 가짜다.

김일성이 왜 한민족 최고의 악질 친일파인가? 6.25 동란이 발발하기 직전인 1950년 4월 22일 국회를 통과한 1950년도 대한민국 예산은 1055억 8518만 5700원(경향신문 1950년 4월 25일자 보도)이었다. 당시 1달러 환율 1800원(1950년 4월 10일 외국환 관리규정과 외국환매매규정)으로 계산하면 1억 달러가 되지 않았다. 경제규모가 엄청나게 커지고 비교적 환율이 안정된 1965년 예산이 3억 3천만 달러(848억 5379억 원/1달러 환율 255원)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전쟁 발발 당시의 우리 경제규모가 얼마나 빈약했는지 알 수 있다.


6.25 동란으로 일본이 벌어들인 달러는 줄잡아 30억 달러가 넘는다. (김남균 미국의 일본경제정책에 끼친 한국전쟁의 영향 미국사 연구 8집 1998년 11월호 278쪽) 대한민국 예산 60배에 이르는 엄청난 액수의 달러를 일본은 6.25 전쟁 특수로 단숨에 벌어들였다. 심지어 일본 수상 요시다 시게루(吉田茂)는 남의 나라가 전쟁의 화염에 쌓인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7월 11일 기쁨을 참지 못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6.25를 “신이 내린 선물이다. 이제 일본은 살았다. 하늘이 일본을 돕는다”고 말할 정도였다. 일본에게 선물을 내린 신은 누구인가? 일본을 살린 자는 누구인가? 일본을 돕는 하늘은 누구인가? 바로 북한 김성주다. 북한 김성주는 한민족 최고의 악질 친일파이다.

백선엽 장군은 역사에 대해 무지한 군인이었다. 백선엽은 자신이 간도특설대로 전출된 1943년을 전후한 중국 화북지역의 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1988년 6월부터 <경향신문>에 연재하던 ‘백선엽 회고록―군과 나’에서의 “공과 과를 기억이 허락하는 한 솔직하게 기록”하겠다는 다짐처럼 “우리들이 쫓아다닌 게릴라 가운데 조선인이 많이 섞여 있었다. 주의•주장에 차이가 있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하려는 일본의 책략에 그대로 끼인 모양이 된다”고 순진하게 심경을 토로했다. 백선엽은 원론적인 자아비판이 집요한 좌파에게 이용당하는 화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백선엽이 항일독립운동가를 때려잡았을 확률은 제로다. 거의 모든 근현대사 연구서들은 1940년 7월을 기점으로 만주에서의 조직적인 항일 게릴라 운동은 사실상 종료되었다고 기술한다. 백선엽을 ‘때려잡기’ 위해 쓴 김효순의 ‘간도특설대’조차 246쪽에서 북한 김성주(김일성)는 제3방면군장 천한장(陳翰章)이 전사하기 한 달 전인 1940년 11월 소부대를 거느리고 혼춘에서 국경을 넘어 소련으로 들어갔다고 기술한다. 김성주는 자신의 회고록이라는 날조 투성이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47 페이지에 치장즈(화룡현 와룡향 화안툰)을 떠난 때가 1940년 10월말 경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백선엽이 조직적인 조선인 항일독립군과 부딪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는 의미다.

백선엽이 항일독립운동가를 때려잡았을 확률은 제로다. 1942년 7월 10일 조선의용대 화북지대가 태항산에서 열린 화북조선청년연합회 제2차 대표대회에서 조선의용군 화북지대(대장 박효삼)로 개편되어 1944년 초 연안으로 이동할 때까지의 조선의용군의 최대 숫자는 175명(염인호 조선의용군 연구 141쪽)을 넘지 못했다. 추적 가능한 모든 자료를 뒤져서 조사된 팔로군 소속 조선의용군 전사자 숫자는 모두 14명(염인호 상게서 342쪽)이다. 전사 지역은 호가장, 석가장 등 진동남 지역으로 백선엽이 활동하던 기동 지역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백선엽이 항일독립운동가로 지칭할 만한 조선인들과 부딪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는 의미다.

백선엽의 “우리들이 쫓아다닌 게릴라 가운데 조선인이 많이 섞여 있었다.”라는 원론적인 자아비판을 ‘항일 독립운동가 때려잡았다'는 자백이라고 날뛰는 자들은 백선엽에게 유리한 자백도 수용해야 한다. 김효순의 간도특설대 292쪽은 백선엽은 “간도 지역에 주둔할 때처럼 마을 주민의 마음을 사려고 했으며 노인에게 공손히 절하고 식량 조달은 후하게 값을 쳐주고 증서까지 써주었다. 이런 작전을 되풀이하면 조선인부대는 예의도 바르고 약탈도 하지 않는다고 소문이 퍼져서 토벌을 나가도 주민들이 도망가지 않았다. 심지어 팔로군 대군에 포위돼 절멸의 위기에 있었는데 부락의 장로가 팔로군가 교섭해 포위가 풀린 일도 있었다. ‘간도특설대는 민중의 편, 팔로군도 민중의 편, 민중의 편은 민중의 편을 공격하지 않는다’라는 기묘한 논리였을 것”이라고 썼다.

백선엽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간도특설대가 창설 이후 부대 해산 때까지 벌인 토벌의 결과는 중국 측 자료 외에는 파악하기 어렵다. 중국 측 집계로는 총 108차례 토벌이 행해져 매달 1회 이상 토벌작전이 있었다. 그러나 지역별로 보면 간도보다는 러허 성에서 벌인 토벌이 압도적으로 많다. 집계 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40년 중반 이후 간도 지역에서 항일연군의 활동이 사실상 종료돼 횟수 자체가 급감한 탓으로 추정된다. 특설대가 살해한 항일 게릴라, 항일 군중은 172명이며 체포한 사람은 139명”이라는 간도특설대 289쪽의 내용이 쉽게 이해가 된다.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수백 수천 명의 군인이 맞붙은 전투의 1회 당 전사자 숫자가 2명도 되지 않는다면 어느 쪽이든 전투에 소극적이거나 미온적이었다는 반증이다.

백선엽은 한민족 최고의 악질 친일파 김성주가 저지른 동족상잔의 비극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낸 호국영웅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말이 있지만, 천사도 역시 디테일에 숨어있다. 모든 논증은 자비로운 해석의 원칙 또는 역지사지의 원칙(최훈 변호사 논증법 23쪽)에서 출발해야 한다. 백선엽이 조선인으로서 독립운동에 참가하지 못하고 만주군으로 복무했다는 죄의식에서 원론적인 자아비판을 했다면 그대로 자비롭게 해석했어야 한다. 그것을 친일 자백이라고 길길이 날뛰는 작태는 악마들의 논리다. 백선엽을 무조건 친일파로 옭아매려는 딜레마 논리를 악용하려다 도리어 딜레마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좌파들은 반성해야 한다.

덧글

  • 無碍子 2019/06/22 10:30 #

    매국노 이하영의 손자이며 조선귀족회 부회장 이규원자작의 아들로 중일전쟁에 참전 금치훈장을 받은 이종찬소좌는 참군인이라하는데,만주군 백선엽중의는 맨날 까입니다.

    백선엽이 그리도 까이는 이유는 다부동에서 인민군을 막은죄라고 생각합니다.
  • 명탐정 호성 2019/06/23 20:47 #

    그 분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가있습니다.

    아마도 좌익을 위한 기여가 적어서 그런가 봅니다
  • 한뫼 2019/06/22 13:01 #

    욕 먹는 이유 적화를 막았기 때문..
    김원봉(소근소근)
  • 명탐정 호성 2019/06/23 18:22 #

    북한군 제1세대의 기반이 된 사람들을 토벌해서 그렇습니다.
  • Mediocris 2019/06/23 19:35 #

    본문에 밝혔듯이 백선엽은 북한군 제1세대인 동북항일연군이나 조선의용군을 토벌한 사실이 없습니다. 시기가 맞지 않거나 주둔지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 명탐정 호성 2019/06/23 20:46 #

    아 그랬군요
  • 호날두 2019/06/24 00:15 # 삭제

    백선엽이 활동하던 시기에 조직적인 항일무장단체와 부딪힌적은 없다고 해도 간도특설대 자체가 항일군 토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부대입니다 ㅎㅎ 그런 부대에 제발로 들어간 백선엽이 친일파가 아니라고요? 그러면서 북한에서 특별한 활동도 없이 숙청 당했던 김원봉은 왜 전범이라고 하세요? ㅎㅎ
  • 명탐정 호성 2019/06/24 06:23 #

    당시 조선인은 일본과 합병국이니 일본을 위하는게 당연한거고

    김원봉은 노동상(노동 장관)등등의 요직에 올라서 기여를 했으니 당연히 전쟁 범죄자이지요.

    김원봉이 전쟁을 반대했다는 주장은 김삼웅만의 주장입니다.
  • 호날두 2019/06/24 10:09 # 삭제

    조선인이 일본을 위해 조선인 항일군을 때려잡는게 당연하다고 말씀하시니 뭐라 말할지 모르겠네요. ㅎㅎ 혹시 학교 다닐때 황국신민교육 받으셨습니까?
  • Mediocris 2019/06/24 11:29 #

    좌파가 백선엽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이유는 ‘항일독립운동가 때려잡았다’는 구체적인 사실 때문이며 단순히 간도특설대에 들어갔다는 사실 때문이 아닙니다. ‘백선엽이 활동하던 시기에 조직적인 항일무장단체와 부딪힌 적은 없다’는 댁의 주장 대로라면 백선엽은 친일파가 아닙니다. 물론 간도특설대에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친일파냐 아니냐 논란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럼 굉장히 골치 아파집니다. 왜 그런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호날두 2019/06/24 14:44 # 삭제

    먼저 하나 확실히 하자면 저는 ‘백선엽이 활동하던 시기에 조직적인 항일무장단체와 부딪힌 적이 없다’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간도특설대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항일군과 싸웠다는 것의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왜냐하면 간도특설대 자체가 일반적인 부대가 아니라 항일군을 토벌하고 제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부대이기 때문이지요. 두 사실이 절대로 독립적인 사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SS친위대였다는 사실만으로 나치 부역자의 강력한 증거가 되는것처럼요.
  • Mediocris 2019/06/24 18:57 #

    국문법을 다시 배우든지 아니면 “백선엽이 활동하던 시기에 조직적인 항일무장단체와 부딪힌 적은 없다고 해도”라는 부분은 취소하겠다든지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댁이야 당연히 간도특설대에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백선엽을 친일파라고 인정하겠지만, 저는 그런 판정기준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일제에 의해 이태왕이라는 봉작을 받고 연 180만 원(현재가치 2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꼬박꼬박 챙겨 드신 과거 고종이었던 이희라는 인간도 친일파가 아닌데 1920년생으로 1941년 일제 극성기를 보통의 일상으로 알고 살아가던 21세 청년이 만주군관학교 들어가고 만주군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친일파가 되는 편향적 판정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독립운동가가 될 수는 없으며 가난하고 야심 많은 청년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살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호날두 2019/06/24 19:16 # 삭제

    본문에서 하도 그렇게 주장하시길래 그렇다고 하더라도 백선엽이 친일파라는 말을 하기위한 가정법입니다. 문장이 깔끔하지 못하게 오해의 여지가 있게 쓰여진건 인정하나 뒷문장까지 고려해서 다시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제 가치관에서는 백선엽이 단순 만주국 장교나 일본 장교가 되었다면 친일여부에 시시비비를 가려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간도특설대는 다릅니다. 명백하게 우리나라 사람들을 목표로 한 군대인데 개인의 가치 실현을 위해 민족과 동포를 적대시 합니까? 그게 민족 반역자가 아니고 뭔가요?
  • Mediocris 2019/06/24 19:33 #

    아직도 “백선엽이 활동하던 시기에 조직적인 항일무장단체와 부딪힌 적은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있다”는 것인지 댁의 태도가 분명치 않습니다. 간도특설대는 다른 만주군이나 일본인 부대와 특별히 다르지 않습니다. 댁은 간도특설대 설립 목적부터 왜곡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간도특설대만을 그 중에서도 특별히 백선엽만을 과녁으로 쓰여진 김효순의 ‘간도특설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읽어도 댁처럼 ‘나치와 SS친위대’의 관계로 읽히는 부분은 없습니다. 본문에도 잠시 언급되었지만, 108회 출동에 민간인 포함 172명이라는 사망자 숫자가 그걸 증명합니다. 거기에 조선인 사망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 호날두 2019/06/24 20:06 # 삭제

    왜 자꾸 제 입장을 강요하시는지? 제 주장은 처음부터 강요하시는 입장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결국 제 의견에 대한 글쓴 분의 입장은 간도특설대는 여타 만주군 부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지요? 더는 대화가 통할 것 같지는 않네요. 제가 논의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요. 저는 이만 줄이겠습니다. 앞으로 간도특설대는 만주군의 일반적인 부대라고 잘 주장해나가보기시길 바랍니다.
  • Mediocris 2019/06/24 23:38 #

    댁의 입장을 강요한 적 없습니다. 댁은 “백선엽이 활동하던 시기에 조직적인 항일무장단체와 부딪힌 적은 없다고 해도”라고 했습니다. 그 문장을 “백선엽이 활동하던 시기에 조직적인 항일무장단체와 부딪힌 적은 없다. 그러나”로 읽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독해입니다. 그런데 댁은 다시 “’백선엽이 활동하던 시기에 조직적인 항일무장단체와 부딪힌 적은 없다’라고 주장한 적은 없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그래서 태도를 분명히 하라고 요구한 것뿐입니다. “간도특설대는 만주군의 일반적인 부대”라는 기술은 저의 독단적 주장이 아니라, 백선엽을 때려잡으려고 기를 썼으나, ‘항일독립운동가 때려잡았다’는 증거를 찾지 못한 김효순의 ‘간도특설대’가 내린 결론입니다. 나중에는 1945년 5월 초부터 8월 11일 해방되기까지 3개월 남짓의 연변 헌병대 파견 근무를 빌미로 헌병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아예 헌병 출신이라는 것으로 물고 늘어지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요? 시대의 양심(?)인 이외수가 “오리너구리는 오리도 아니고 너구리도 아니다”라고 한마디 해도 댁들은 절규합니다. “김일성은 안 보여! 우리는 백선엽을 반드시 친일파로 만들고야 말겠다.” 역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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