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위가 의심되는 박정희 혈서설의 허구성 재조명 박정희비평

좌파가 이승만을 독재자, 박정희를 친일파라고 매도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김대중, 노무현을 추켜세우는 포지티브 전략에 기대만큼의 효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승만, 박정희를 깎아내리는 비열한 네거티브 전략으로 노선을 수정했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 역사는 온통 치욕으로 얼룩져 갑니다. 한홍구의 말처럼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황국신민’으로 살아야 했던 박정희를 혈서만으로 친일파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박정희가 혈서를 썼다는 기사조차 진위가 의심스럽습니다.


박정희 혈서설의 증거를 발견했다고 국내 최초로 보도한 2009년 11월 5일 오마이뉴스의 만주신문 기사는 기사의 내용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가 의문투성이었습니다. 오마이뉴스 보도 이후에 1939년 당시 만주에는 <만주신문>이라는 이름의 신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궁색해진 박정희 혈서설 신봉자들은 <만주신문> 아닌 <만주일보> 착오라고 변명했습니다.  <조선일보>를 <조선신문>으로 착각했다는 주장입니다만, <만주신문>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원본 없는 마이크로필름을 증거로 믿기에는 기사가 너무 허술합니다. 1939년(康德 6年) 2월 24일자 만주국 공보에 신경군관학교 제1기 합격자가 발표됩니다. 만주신문은 1939년 3월 29일에 도착한 제1기 관련 혈서를 3월 31일자로 보도합니다. 아무리 늦어도 일주일이면 도착하는 혈서 편지가 합격자 발표 한 달 뒤에 도착했다는 말입니다. 날짜조차 맞지 않는 박정희 혈서 기사는 군관학교 제1기 모집과는 전혀 관련 없다는 명백한 증거로써 혈서 기사가 조작이라고 의심받는 이유입니다.


그러자 혈서가 1940년 1월 4일 제2기 합격을 위한 것이라는 해괴한 주장(https://youtu.be/QHgORkBhFOc)도 등장합니다. 혈서를 썼지만, 제1기 시험에 연령 초과를 이유로 거부되었는데 제2기 시험에 같은 혈서가 효력을 발휘했다는 겁니다.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인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는 1939년 3월 31일 기사는 혈서가 7개월 뒤의 제2기 시험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명백한 증거인데도 억지를 부립니다.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 5년 동안 교련교육(4주 이상의 일본군 보병 80연대 입영훈련 포함)을 받고 교련검정시험에 합격했으며 졸업과 동시 판임관(하사관 예우)인 2종 훈도(2급 정교사)에 임명됩니다. 문경서부심상소학교 재직 당시 의무적인 5개월 단기 입영훈련을 받고 예비역 오장(하사관)의 자격을 얻는데 이걸 단기현역제(短期現役制)라고 합니다. 하사관은 육군사관학교의 예과인 군관학교에 26세까지 지원자격이 있습니다. 군관학교 제2기에 응시한 22세 박정희는 혈서를 쓸 이유가 없습니다.


박정희가 실제 혈서를 쓰지 않아도 누군가 기사를 만들어 냈을 가능성은 충분히 남아 있습니다. 대구사범학교 교관 시절 박정희를 아꼈고 당시 신경 제3독립수비대 대장으로 근무하던 아리카와 게이이치(有川圭一)가 조선인의 충성심을 선전하기 위해 만주신문과 짜고 기사를 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주군 선배 강재호 대위가 조선인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혈서설을 조작해 냈을 가능성도 있지만, 당사자들이 모두 죽고 없는 상황이므로 뭐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허위로 판명된 오카모토 미노루 이중 창씨개명 루머처럼 박정희 친일파 매도에 악용된 박정희 혈서설은 1998년 10월 28일에 초판 출간된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제2권 95페이지 유증선의 증언이 시작입니다. 그러나 제1기 만주군관학교 시험 공고 이전인 1938년 5월에 박정희가 혈서를 썼다는 시간조차 맞지 않은 증언은 거짓으로 드러납니다. 그렇게 사라졌던 혈서설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가 출간되고 11년이나 지난 2009년에 만주 아닌 일본에서 증거가 발견됩니다.

수십 년 동안 일본의 국회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던 박정희 혈서 기사를 한국 기자가 어떻게 귀신 같이 발견할 수 있었을까요? 원본 없는 마이크로필름, <만주신문> 또는 <만주일보> 혈서설의 진위는 현명한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하기 바랍니다. 끝으로 혈서설 신봉자들에게 경고합니다. 그대들이 <만주신문> 혈서설을 그토록 고집한다면 대한민국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김일성과 관련된 중대한 기록도 바꿔야 한다는 점(좌파에게는 아주, 매우, 몹시 쓰라린)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추가) 일제 사범학교에서 교련검정시험에 합격하고 소학교 교사 재직 중 의무적인 5개월 단기 입영훈련을 마치고 예비역 오장(하사관)의 자격을 취득하는 제도를 단기현역제(短期現役制)라고 합니다. 일제의 식민지 엘리트 양성 교육 정책의 증거로써 내지 군인의 불만을 야기할 정도로 대단한 특혜였습니다. 박정희는 이런 모든 과정을 이수했기 때문에 혈서 따위는 쓸 필요조차 없이 군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김일성 항일투쟁 경력 조작에서 보듯 좌파의 역사왜곡은 의외로 허점이 많습니다.

과거에 친일파 청산 칼춤을 추다가 자기 아버지의 친일경력 때문에 제 칼로 제 목을 자른 열린우리당 의장 신기남의 부친 신상묵(辛相默) 창씨개명 시게미쓰 구니오(重光國雄, 重光國夫, 重光邦雄)도 이런 제도의 수혜자였습니다. 신상묵은 대구사범학교 졸업 후 청풍소학교에서 훈도로 근무하다가 갑자기 헌병으로 직업을 바꾸었는데 계급이 헌병 오장(伍長)이었습니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시의 교련교육과 교사 시절의 단기현역병 제도 때문에 별도의 군사훈련 없이 헌병 오장이 될 수 있는 특혜를 받았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제도의 잔영을 볼 수 있었는데 1969년 개정된 병역법 제51조에 따라 설치된 학군하사관후보생(RNTC) 제도입니다. 이 제도에 의해 4년간 교육대학에서 RNTC 교육을 마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된 자는 7년간 의무복무 하면 병역을 마치는 것으로 인정하는 제도였습니다. 이보다 더한 특혜로는, 비록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운용되었지만,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2급 정교사로 임용된 자가 6개월간의 입영훈련과 3년간의 의무복무로 병역을 마치고 예비역 장교가 되는 것을 인정하는 파격적인 제도도 있었습니다.

덧글

  • 피그말리온 2018/02/20 00:53 #

    솔직히 뭐 어쩌자는건가 싶은게 있는...그런다고 박정희가 유신 안 한 것도 아니고, 박정희가 경제발전 이끈게 아닌 것도 아니고...
  • Mediocris 2018/02/20 00:59 #

    박정희 친일파 프레임은 김일성 항일투사 프레임과 양립합니다. 좌파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안다면 <뭐 어쩌자는 건가>로 방심하지 못합니다.
  • 피그말리온 2018/02/20 01:15 #

    요즘 돌아가는거 생각하면 그게 그냥 한계려니 싶은게 있습니다.
  • Mediocris 2018/02/20 22:58 #

    불의에 분노하고 거짓을 폭로하는 행위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상아 조각이 생명을 얻는 일도 힘듭니다. 조금 더 힘내시기 바랍니다.
  • ㄹㄹ 2018/02/20 09:52 # 삭제

    어떤사람은 저기 밑에 광고를 가지고 저 신문자체를 의심하기도 합니다

    저 사라다오일 광고 저당시에 만들 수 없다고 하던데 정확한건 조사해봐야 알겠죠
  • Mediocris 2018/02/20 11:17 #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접근이군요. 혹시 <사라다오일 광고> 논란의 출처를 알 수 있을까요?
  • 흑범 2018/02/20 12:01 #

    중학교,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그리고 근현대사 시간에 조선어학회 사건을 언급하면서, 1940년대에 한글 말살정책을 펼쳐서 못쓰게 했다, 일본어를 쓰게 했다...

    하는 거짓말이 수업시간에 교육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40년대의 신문에도 한글과 한자가 섞여서 쓰였습니다.

    http://newslibrary.naver.com/search/searchByKeyword.nhn#%7B%22mode%22%3A1%2C%22sort%22%3A0%2C%22trans%22%3A%221%22%2C%22pageSize%22%3A10%2C%22keyword%22%3A%22%EC%9D%B4%EB%8F%99%22%2C%22status%22%3A%22success%22%2C%22startIndex%22%3A1%2C%22page%22%3A1%2C%22startDate%22%3A%221938-01-01%22%2C%22endDate%22%3A%221938-12-31%22%7D

    저들은 늘 이런 식입니다.
  • 흑범 2018/02/20 12:03 #

    그렇다면 보수 쪽에서도 저들의 잘못, 이중잣대에 대한 증거, 자료를 남겨서 폭로하면 됩니다.

    좌파 진영의 날조와 거짓은 반드시 폭로해야 됩니다.

    반좌파 진영에는 단지 좌파가 싫은 사람들, 좌파들 설치는 것이 싫은 사람들, 좌파들의 잘난 척이 싫은 사람들이 많은 편이라서 좀 힘들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포기하면 안되지요.
  • 無碍子 2018/02/20 16:59 #

    혈서가 아니라 혈서 썼다고하는 사람의 사진인지가 의문이 들어요.
  • Mediocris 2018/02/20 20:41 #

    박정희가 아닌 여성의 얼굴이라는 논란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진보다도 기사 내용 자체가 너무도 허술합니다.
  • 흑범 2018/02/21 15:43 #

    포토샵 귀신같이 잘 다루는 사람들은 합성한 것도, 티 안나게 하는 것도 많습니다.

    포토샵 오른쪽의 툴바메뉴 별로 안 건드리고도 말입니다.
  • 2018/02/21 12:59 # 삭제

    원본은 따로 있고 마이크로 필름은 열람용이겠죠. 원본 그대로 보여주면 한국 극우파가 가서 훼손했겠죠.
  • Mediocris 2018/02/21 13:14 #

    댁의 논리라면 마이크로필름도 훼손할 수 있습니다. 혈서설 기사는 자료 형태가 아니라, 내용 자체가 터무니없이 맞지 않아 조작으로 의심합니다.
  • 흑범 2018/02/21 15:42 #

    노동귀족이나 시민단체 인간들이 매사 그렇게 행동하나 봐요?
  • 2018/02/21 20:31 # 삭제

    원본이 있으니까 그거 가지고 마이크로필름은 또 만들 수 있죠
  • 흑범 2018/02/22 16:45 #

    노동귀족이나 시민단체 인간들이 그런다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지는 않습니다.
  • Mediocris 2018/02/22 19:49 #

    ㅇ/원본이 있는데 <만주일보>를 <만주신문>으로 읽어요? 반복하지만, 자료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기사 자체가 너무 허술하여 조작이 의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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