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백의 ‘김일성은 가짜가 아니다’를 반박한다 김일성비평

가짜 김일성을 규명하기 위한 연보 작성 작업 과정에서 찬반 진영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었다. 북괴 김성주가 가짜 김일성이라는 이명영이나 허동찬은 반대 진영의 논리에 대해 보완 자료로 반박하고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은 하지 않는 반면 북괴 김성주가 진짜 김일성이라는 이종석, 신주백, 서대숙 등은 반대편의 주장이 ‘일제의 허위 정보에 의했다’며 이중잣대를 적용하거나 ‘반공이데올로기 조작에 편승했다’고 매도하거나 ‘정치적 의도를 가진 저작’이라고 비난했다. 근거 없는 인신공격을 앞세우는 이들이야말로 역사학자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의 사료나 증언은 옳고 사실인 반면 상대편의 증언이나 사료는 정치적이라거나 허위정보라는 주장은 이중잣대에 불과하다. ‘반공이데올로기 조작에 편승했다’거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몰되었다’고 인신공격을 하려면 최소한의 근거라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이명영이나 허동찬이 반공이데올로기 조작에 편승했다거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졌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짜 김일성 논란에서 찬반 진영에 관계없이 제대로 사료 채택을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1. 상대방의 사료가 일제의 허위 정보라고 주장한다면, 자신이 채택한 사료의 일제 정보도 허위라고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사료가 일제 정보나 신문기사라면 상대편이 채택한 일제 정보나 신문기사도 인정해야 한다.
2. 상대방이 채택한 개인의 증언이 허위라면 자신이 채택한 개인의 증언도 허위라고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개인의 증언에 기초하여 사실이라고 주장했다면 상대방의 개인 증언에 기초한 주장도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
3. 대부분이 날조인 북한의 역사서와 날조된 북한 역사서의 입장을 반영한 중국 사료를 사실이라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북한 역사서나 중국 문헌은 한국, 일본의 사료와 일치하는 경우에만 선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북괴 김성주 연보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1991년 역사비평에 발표되었다가 1994년 ‘바로 잡아야 할 우리역사 37장면’에 수록된 신주백의 ‘김일성은 가짜가 아니다’라는 글을 읽었다. 논문이라고 하기엔 분량도 작고 사료 전거도 의심스러운데다가 내용조차 엉성해서 반박할 가치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만주 항일무장투쟁사 전문가로 알려진 그의 경력이나 대학이나 강연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그의 유명세와 영향력을 감안하여 정확한 반박이 필요하다고 느껴왔다. 그러다가 ‘청년, 역사를 돌아보다’라는 2012년도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동영상에서 신주백은 김일성이 보천보 야습에 직접 참가하지 않고 산 위에서 지휘를 했기 때문에 보천보 야습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북괴 김성주가 진짜 김일성이라는 기존의 입장은 바꾸지 않고 있다. 그런 신주백은 북괴 김성주가 가짜 김일성이라는 이명영을 ‘반공이데올로기 조작에 편승한 필생의 학문적 업적’으로 조롱하거나 김일성은 두 사람이라는 허동찬을 ‘궁지에 몰린 나머지 최후의 안간힘을 쓴다’고 매도했다 자신과 반대되는 주장을 편다고 근거 있는 비판은 하지 않고 인신공격을 앞세운 신주백에게 인간적 비애마저 느낀다.

신주백은 북괴 김성주가 진짜 김일성이라는 증거로 조선혁명군 참모장이었던 백파 김학규 장군의 “내가 참모장으로서 1932년 여름 당취오(唐聚五)군과 같이 통화에 사령부를 설치하고 있을 때 김성주가 무송으로부터 한국공산청년 수십 명을 데리고 사령관 양세봉 장군과 나를 찾아와 항일을 할 테니 무기를 달라고 요구했다”는 증언을 내세웠다. 김학규 장군의 증언은 사실이지만, 김성주가 양세봉 장군을 찾아온 사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신주백은 몰랐음이 틀림없다. 알았더라면 김학규 장군의 증언을 진짜 김일성의 증거로 내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김학규 장군의 증언은 북괴 김성주가 민족주의 정의부 간부였던 부친 김형직의 영향을 받아 오랫동안 민족단결, 반만항일, 조중연대라는 비교적 건실한 사고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는 반증에 불과하다. 김성주가 1931년 5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주장을 부인하는 방증이기도 하다. 북괴 김성주는 1931년에 중공당에 입당하기는커녕 1936년 전반까지도 동북군 출신이었던 국민구국군 지휘자 오의성의 당번병 노릇을 했다. 근본적으로 북괴 김성주에게 공산당은 거리가 먼 단체였다. 그러기에 동북항일연군에 편입하는 시기는 1936년 이후가 된다.

김학규 장군의 증언을 이해하려면 고동뢰 참살사건을 알아야 한다. 김성주가 무송에서 무력 행패를 일삼자 보다 못한 국민부 장철호는 조선혁명군 본부로 총사령 양세봉을 찾아가 김성주를 응징해달라고 부탁한다. 양세봉은 국민부 유하현 삼원포 총수 이병근 수하 소대장 고동뢰에게 김성주 패당을 처단하라고 지시한다. 고동뢰는 9명의 소대원과 함께 100km 넘는 눈길을 걸어 무송에 도착했으나, 피곤하여 방에서 자다가 이를 사전 탐지한 김성주 일당의 급습으로 전부 참살 당한다. 김성주는 사건 직후 무송에서 도주한다. 1932년 2월 중순의 일이다.

 

고동뢰 참살사건 이후 새날동맹 패당들과 떠돌던 북괴 김성주는 빌붙을 곳이 없자 다시 양세봉 장군과 김학규 장군을 찾아온다. 정의부 동료였던 부친 김형직의 후광과 양세봉의 온정에 매달렸다는 증거다. 양세봉은 김성주를 용서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떠난다. 중공당에 관계할 수도 입당할 수도 없었던 어설픈 민족주의자 김성주는 중공당과는 관계없는 민족주의 중국구국군 오의성을 찾아가 당번병 노릇을 하며 1936년 전반까지 떠돌게 된다. 이런 엉성한 증거로 김성주를 진짜 김일성이라고 우기는 신주백의 다른 주장들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덧글

  • 별일 없는 2016/02/01 20:31 #

    만약 저게 사실이면 김일성 진퉁파는 ㅂㅅ인듯 ㅋㅋㅋ 마치 유전학을 정치랑 스섹시킨 리센코의 후예들이네.
    근데 각자의 주장과 근거가있었으면 젛겠고 이건 역밸글아님?
  • Mediocris 2016/02/01 21:21 #

    가짜 김일성 추적 포스팅을 왜 굳이 뉴스비평 밸리에 올리는지 궁금한 분들이 계시리라 짐작됩니다. 과거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뉴스(news)라고 생각합니다. 베네데토 크로체가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고 말한 이유도 이런 의미라고 판단합니다. 뉴스비평 밸리에 잠깐 머물다가 구문(oldies)이 되면 역사 밸리로 옮길 예정입니다.
  • botw 2016/02/02 09:30 #

    저 당시 김성주가 민족주의자라는 건 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육문중학 다닐때부터 공산주의에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공산주의자인 이종락밑에 있으면서 완전히 그쪽 노선을 추종하는 것이 드러나 있지요.
    김학규장군 자서전(http://botw.egloos.com/11086764)에도 저 당시 이미 김성주는 공산주의자였다고 나오고, 당시 국민부내에서도 공산주의자들과 이념 분쟁이 심각했습니다.

    당시 조혁군 일원이었던 계기화 옹의 호고록 (http://blog.daum.net/dreamaway/7248992)에 보면 이종락이 장소봉이란 공산주의자의 설득에 넘어가 조선혁명군의 1개 중대를 이끌고 공산진영으로 이탈하여 국민부에 막대한 타격을 줍니다. 장소봉은 김성주 회고록에도 나올 겁니다.

    이종락은 1931년 2월 3일에 일경에 체포되어 [ http://botw.egloos.com/11112340 ] 6년간 징역을 살고 1935년 음력 6월에 석방되었는데, 이때부터는 일제의 협력자가 되어 조선혁명군의 일제 귀순을 권유하고 다닙니다. 나중에 1939년 부터는 일제의 김일성(김성주) 귀순 공작에 나서 양쪽을 오가며 중재자 역할을 하다 1940년1월 중순 쯤 양정우에게 들켜 총살 당합니다. 양정우도 1달뒤 전사하지요. 김성주는 회고록에서 귀순을 설득하러 온 이종락을 자기가 죽인 것처럼 썼지만, 저 당시 김성주는 귀순을 결심하고 사후 안전보장책을 거래하다 양정우에게 들켜 파탄난 겁니다.

    그리고 고동뢰 소대장이 살해 당한 것이 1932년 1월 15일이라 했는데, 김일성 열전에는 2월께라고 했고, 1932년 2월 상순에 고동뢰 소대장이 조혁군을 배신하고 일제 협력자가 된 황규청이란 사람을 죽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고 소대장이 살해당한 것은 1932년 2월 상순 이후일 겁니다.
    http://botw.egloos.com/1120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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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ediocris 2016/02/02 14:27 #

    김성주가 길림 육문중학교 재학 중에 조선공산청년회에 10일 가량 입회했대서 완전히 공산주의로 기울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물론 중공당의 세력이 남만으로 확장되는 시점이므로 김학규 장군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김성주에게 공산주의란 상월 선생의 영향을 받은 젊은 시절의 이질적 사상에 대한 호기심 정도였다고 판단됩니다. 이종락이나 김성주가 완전한 공산주의자였다면 1929년 11월 2일 흥경현에서 열린 남만청총 수습대회에 참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종락 일당은 좌경 성향의 반국민부파로 파악해야지 완전한 공산당 집단으로 볼 수 없습니다. 이종락이 좌경 성향으로 기울어 독자적인 무장세력으로 활동한 것이 국민부에겐 타격이겠으나, 제시하신 회고록을 비롯한 어떤 문헌에서도 이종락이 중공당에 가입했다거나 1개 중대로 국민부를 공격해서 피해를 입혔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고동뢰 소대장의 암살시기가 2월 상순 이후라는 좋은 정보에 감사합니다. 연보엔 분명히 2월로 되어있는데 실수로 잘못 썼군요.
  • botw 2016/02/02 14:36 #

    중국공산당 가입여부와는 별개로 이종락의 길흑농민동맹이니 타도제국주의 동맹이니 하는 게 공산주의 단체로 보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위장을 잘하니 다른 성향으로 가장을 할 때도 있겠지요.
  • Mediocris 2016/02/02 15:30 #

    이종락의 길흑농민동맹이나 현균의 타도제국주의동맹이 좌경일 가능성은 있으나, 명확하게 공산주의 단체라는 근거도 없습니다. 심지어 이종락의 조선혁명군사령부가 민족주의 우파와 공산주의 좌파를 배제한 순수한 민족주의 좌익단체라는 신문기사도 있습니다.
  • botw 2016/02/02 10:48 #

    김성주가 1932년 2월 고동뢰 소대장 살해 후 도망갔다 다시 양세봉 장군을 찾았다 떠난 뒤 1938년 6월 김일성(金日成)이란 이름으로 일제 기록에 나올 때까지 사이의 김성주의 행적을 보여주는 분명한 기록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잡다한 주장들이 있는 것 같지만 명백한 기록적 근거는 보지 못했습니다.

    1939년 무렵의 김성주는 김일성이란 이름으로 양정우 아래 항일연군 1로군 중간 간부로 부하 100~200명 정도를 거느리고 있었던 건 확인이 됩니다. 따라서 1로군의 제2방면군장 김일성과는 동일인일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고 봅니다. 물론 이명영교수 주장처럼 안경 낀 사진이나 처 김혜순 체포 사건등 좀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제2방면군장 김일성을 독립된 다른 사람으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도 또한 상당히 많습니다.

    더구나 이명영 교수가 주장하는 제2방면군장 김일성의 소련으로 간 후의 행적은 소련즉 기록이 상당히 공개된 지금 전혀 확인이 안되고 있습니다. 소련측이나 중국측 기록에 소련에서의 김일성은 김성주 한 사람만 나오는 걸로 압니다.
  • Mediocris 2016/02/02 14:11 #

    지금의 연보 작성 작업이야말로 바로 <김성주가 1932년 2월 고동뢰 소대장 살해 후 도망갔다 다시 양세봉 장군을 찾았다 떠난 뒤 1938년 6월 김일성(金日成)이란 이름으로 일제 기록에 나올 때까지 사이의 김성주의 행적을 보여주는 분명한 기록>을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김일성(金日成)이란 이름은 1938년 6월보다 이전인 1935년 8월에 등장합니다. 여기의 김일성(金日成)이야말로 진짜 김일성으로 추적 가능한 인물이며, 북괴 김성주로 볼 수 없는 인물입니다.

    <안경 낀 사진이나 처 김혜순 체포 사건 등>은 북괴 김성주가 본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조선혁명박물관에 전시하거나 본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김혜순과 만났다는 기록을 남긴 것이지, 이명영 교수의 일방적 주장이 아닙니다. <안경 낀 김일성이 북괴 김성주>라는 주장은 <유재석이 강호동>이라는 주장과 같으며, 김일성의 처 김혜순과 북괴 김성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좀 미심쩍은> 정도가 아니라 북괴 김성주가 가짜 김일성이라는 확실한 방증입니다.

    <이명영 교수가 주장하는 제2방면군장 김일성의 소련으로 간 후의 행적은 소련측 기록이 상당히 공개된 지금 전혀 확인이 안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요? 33세의 소련군 대위 혹은 소좌를 괴뢰정권의 꼭두각시로 내세웠는데 소련이나 후속 러시아 정권이 진짜 김일성의 기록을 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련측이나 중국측 기록에 소련에서의 김일성은 김성주 한 사람만 나>온다고 북괴 김성주가 진짜 김일성이라는 증거는 아닙니다.
  • botw 2016/02/02 14:38 #

    이명영교수가 주장하는 제2방면군장의 소련에서의 행적의 전거가 뭔지 밝혀진게 없지요.
    그리고 제2방면군장 김일성과 김성주(김일성)는 같은 시기에 항련 1로군의 상당한 고위직에 있은 셈이 되는데 한자까지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이 동시에 유사한 지위에서 활동한다는게 가능할지 의심스럽습니다.

    김정숙 이전의 김일성의 처에 대한 증언은 허진(임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증언도 있습니다.
    한재덕은 전처가 일경에 체포된 후 그 경찰의 첩이 되었다고 했고, 유성철은 한성희라는 전처가 일경에 체포된 적이 있다고만 했습니다. 항련의 군기가 엄격해서 그런 결혼은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1940년 당시 항련은 거의 궤멸 단계에 이른 시기이니 엄격한 군기 같은 거 따질 상황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보천보 김일성도 부하들이 모르는 처를 숨겨두었다는 것은 김일성 열전에도 나오지요.
    김일성은 여자 관계가 복잡하고 소문도 많아 그 문제는 갈피를 잡기 어렵습니다. 김정숙이 죽은 후 홍명희 딸과 결혼했다는 당시 언론 보도도 있습니다. 홍명희 딸이 일찍 죽어 그후 김성애와 결혼 한 거라는 주장도 있고,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김정일은 북한의 주장과 달리 1941년 2월 16일 생이 맞습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확정되고 나서 1941년 생을 42년생으로 바꿔 40세 생일이 2년 연속 북한 언론에 보도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김정숙이 김정일을 임신한 건 1940년 4, 5월께가 될 겁니다. 공식적으로 김정숙과 결혼하기 전이지요.
  • Mediocris 2016/02/02 15:46 #

    제2방면군장과 북괴 김성주가 金日成라는 이름을 같이 쓰지 않고 제2방면군장은 金日成이라는 이름을 북괴 金聖柱는 본명을 그대로 사용했고 북괴 김성주는 제2방면군장 사망 이후에 金日成이라는 이름을 차명했다고 가정해 보세요. 김정일의 생일이 1941년 2월 16일이면 1940년 소련으로 도망가면서 훈춘에서 결혼할 때 벌써 임신 4개월이라는 이야긴데, 믿기 힘들군요. 아니면 1940년 8월 소련으로 도망가던 김일성이 제2방면군장일까요?

    金日成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주보중(周保中)의 동북항일유격일기(東北抗日遊擊日記)나 ‘동북항일연군 제5군’ 등의 중국 문헌은 1980년대 이후에 발간된 문서라는 점도 감안하면 어떨까요? 북한의 역사 날조는 워낙 체계적이고 방대해서 중국 문헌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봅니다.

    김혜순에 관련한 저의 포스팅을 2개를 참조하십시오. 단순히 북괴 김성주의 여자관계가 복잡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김혜순, 한성희, 한영숙, 한영애 모두 북괴 김성주와 전혀 관련 없는 인물들이라고 북괴 김성주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http://mediocris.egloos.com/11199996
    http://mediocris.egloos.com/11199711
  • botw 2016/02/02 15:54 #

    김성주가 1939~1940년 경 부하 100~200 명을 거느린 항련 1로군 중간간부로 있으면서 金日成 이름을 쓴 것은 일본측 및 한국측 자료에 나오는 겁니다. 1939년 사상휘보 같은 자료가 나오는 것은 김성주가 당시 金日成 이름으로 행세했을 때나 가능한 것이지요. 1940년 4월 만선일보 연재물 비수 김일성의 생장기 같은 것과, 1949년 반민특위 김창영 재판 기록을 봐도 당시 김성주는 金日成 이름을 쓰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1940년 4월 만선일보 기사에는 김성주가 만주사변(1931년) 무렵 죽은 유명한 비수 金日成의 이름을 습명했다고 했습니다. 이건 착오같고, 지나사변(중일전쟁, 1937년) 무렵 죽은 보천보 金日成의 이름을 습명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http://botw.egloos.com/1110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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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tw 2016/02/02 15:58 #

    그리고 김일성 회고록은 김정일의 정통성을 위해서라도 김정숙 이전의 김일성의 모든 여자관계는 부정하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 Mediocris 2016/02/02 16:02 #

    안경 쓴 근시의 김일성 사진이 찍힌 시기는 1937년 가을이라고 합니다. 제6사장 김일성은 1937년 11월 13일에 사살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김성주가 1939~1940년경 부하 100~200 명을 거느린 항련 1로군 중간간부로 있으면서 金日成 이름을 쓴 것>과 사상휘보의 김성주는 金日成을 습명한 북괴 김성주일 가능성도 높지만, 그것만으로는 보천보 야습을 지휘한 진짜 김일성이라는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제가 밝히려는 목표는 <북괴 김성주는 1937년 6월 4일 보천보 야습을 지휘한 제6사장 김일성이 아니다>입니다.
  • botw 2016/02/02 16:06 #

    안경 쓴 사진의 정확한 연도는 어디에 나오는 건지요?
    제가본 중국측 자료에는 1939년 것이라고 나옵니다.
    1939년이면 보천보 김일성은 죽은 이후이므로 다른 사람이지요
  • botw 2016/02/02 16:10 #

    김성주가 보천보 김일성이라 주장하는게 아닙니다. 김성주는 보천보 김일성이 죽은 직후 적어도 1938년 6월경부터 김일성 이름을 쓴 것입니다. 그리고 1로군 중간 간부였던 것도 맞고요.
  • botw 2016/02/02 16:15 #

    보천보 김일성은 죽은 것이 맞고, 제2방면군장 김일성과 북한 김일성은 같은 시기의 동명이인이냐, 아니면 동일인이냐의 문제입니다. 김성주는 적어도 1939년애는 金日成 이름을 쓴 것도 확실하고, 1로군 중간간부였던 것도 맞습니다.
  • Mediocris 2016/02/02 16:19 #

    <김일성 회고록은 김정일의 정통성을 위해서라도 김정숙 이전의 김일성의 모든 여자관계는 부정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전거로의 가치는 부정됩니다. 그렇다면 북괴 김성주에게 김혜순 혹은 한성희라는 전처가 있었다는 허진(임은)이나 한재덕이나 유성철의 증언만 진실로 수용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들의 증언을 진실로 수용한다면 북괴 김성주는 <안경 쓴 근시의 제2방면군장 김일성>이 아니라는 김혜순의 증언도 수용해야 합니다.

    북괴 김성주는 제6사장을 습명한 김일성일 가능성은 있지만, 보천보 야습을 지휘한 제6사장 김일성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고 판단합니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과 북한 김일성은 같은 시기의 동명이인이냐, 아니면 동일인이냐의 문제>는 조선혁명박물관에 전시된 1937년 가을의 집체사진을 조작함으로써 북괴 김성주 자신이 동일인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했다고 봅니다.
  • botw 2016/02/02 17:08 #

    김혜순은 김성주의 전처일 수도 아닐 수도 있고 명확히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고 봅니다. 김혜순의 증언 또한 사실대로 말한 것이 아닐 가능성도 큽니다.

    삼천리 잡지에 1937년과 1938년 두 차례 김일성에 대한 기사가 실렸는데, 거기에는 김일성 회견기라면저 피납자가 김일성과 문답한 내용이 나옵니다. 말이 앞뒤도 맞지도 않고, 거기 김일성은 어떤 김일성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습니다. 김일성이 피납자에게 자신의 정확한 신상을 털어놓았 리 만무하니 이말 저말 아무거나 주워댄 것으로 판단합니다. 김혜순의 증언도 비슷한 부류일 가능성도 큽니다.

    그리고 일제는 1939년부터 김일성 귀순 공작을 벌이는데, 이 대상자는 북한 김성주가 확실합니다. 적어도 1939년에는 일제는 당시 김일성이라 칭하는 자의 정확한 신원을 파악하고 있었고, 김일성의 할머니나 김일성의 지인인 이종락, 박차석 등까지 동원합니다. 1939년 사상휘보에 김성주의 정확한 출생지 주소가 실린 것도 이런 사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귀순공작의 대상이라는 것은 김성주가 그냥 말단 병사는 아니고 중간급 간부 정도 이상인 것을 말합니다. 만선일보 보도나 김창영의 증언에 나오는 그대로 김성주는 당시 김일성이라 창하는 중간급 간부였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 Mediocris 2016/02/02 20:24 #

    이명영 교수의 김일성열전 320페이지에 나오는 제2방면군장 김일성의 처 김혜순이 북괴 김성주의 전처가 아니라는 증언은 <김일성 피납자와 비슷한 부류인 김혜순>의 증언이 아니라, 김혜순과 직접 생활했다는 노조에(野副)토벌대의 공작대장 나카지마 다마지로오(長島玉次郞)의 대단히 구체적인 증언입니다. 그런 증언조차 무시한다면 과연 어떤 증언이나 사료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사상휘보 20호도 결국 증인 심문에 의한 기록일 텐데요?

    그에 비해 북괴 김성주의 전처 한성희의 가명이 김혜순이라는 허진(임은)의 김일성왕조비사 64페이지의 기록은 유성철의 증언과 마찬가지로 김일성의 유격활동과 관계없는 이상조라는 인물이 해방 후 평양에서 들었다는 고급한 정보 또는 소설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나카지마의 증언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안경 쓴 근시 김일성의 사진이 1939년이라는 중국측 자료란 무엇입니까? 북괴 김성주가 金日成이라는 이름을 썼다는 1938년 6월의 전거는 무엇인가요?
  • botw 2016/02/02 23:05 #

    김혜순과 같이 생활한 적이 있다고 해서 김혜순이 사실 그대로 정직하게 진술했다고 믿을만한 근거는 못 됩니다. 고문한다고 해도 사실대로 안 대는 수도 있으니.

    유성철은 해방전 88여단에 김일성과 같이 있었기 때문에 이상조보다 훨씬 더 김일성의 전력에 대해 정확히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상조는 해방후에 들은 이야기일텐데 믿을만한게 못됩니다.

    사상휘보는 혜산 사건 증인 신문에 의한 것이 아니고 다른 정보원에 의한 것일 겁니다. 증인 신문에 의한 것은 혜산 사건 수사기록에 실려 있을테고, 시원감일이 증언한 것과 비슷한 것일테죠. 사상휘보가 간행될 1939년 8월 무렵에는 이종락을 동원한 김일성 귀순공작이 진행되고 있을 때입니다. 일제는 그 김일성이 북한 김성주라는 걸 파악하고 있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종락, 박차석 뿐만 아니라 김성주 할머니까지 동원했으니까요.

    일제의 1938년 6월 기록에 김일성이란 인물이 평남 대동군 출신이라 한 것이 있습니다. 김성주일테지요. 보천보 김일성 사후이고, 사상휘보보다 1년여전입니다. 사상휘보는 여기에 고평면 남리가 더 추가된 것이고요.
  • botw 2016/02/02 23:31 #

    안경 낀 김일성 사진이 1939년 것이라는 중국측 자료는 길림성 도서관 것으로
    http://www.jlplib.com.cn/szzy/dbkrljdzs/xglm/ 에 있습니다.
    오른쪽 밑에서 두번째 사진 설명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 적힌 김일성 이력은 출처도 명확하지 않고 그다지 신빙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사진의 연도는 1939년이라 했습니다. 2군 6사장을 지냈다는 말은 북한측 주장과 동일하게 믿을 수 없는 거고요.
  • botw 2016/02/02 23:32 #

    1938년 6월 1일자 김일성이 평남 대동군 출신이라는 일제 기록
    http://botw.egloos.com/11139508

    보천보 김일성이 죽은 후이고, 북한 김성주가 맞을 겁니다.
    --------------------------------------------------
  • botw 2016/02/03 10:18 #

    김일성의 일제시대 행적에 대해 디테일한 부분은 아직도 명확하지 않은 점이 많습니다만, 적어도 가짜 김일성 논란에 대한 것은 상당히 진실에 가깝게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겁니다.
    그 동안의 연구 결과 및 인터넷 자료 검색이 가능해진 이후 새로 발견된 일제시대 자료와, 공산권 붕괴후 나온 평양 소련군정 책임자 들과, 망명 북한 전직 고위 인사들의 증언까지 종합하면 비교적 정확한 윤곽을 그릴 수 있습니다.

    해방후 소련군이 북한에 데리고 들어온 김성주는 국내 누구도 어디서 뭐 하던 자인지 알지 못하는 사실상 무명인사 인사이고, 국내 지지 세력도 전무해서 지도자로 내세우기는 부적격한 인물이었던 것이 맞습니다. 소련이 억지로 정치 공작을 통해 지도자로 만들려고 하다보니 구전으로 전해온 전설적 항일영웅 김일성 장군의 이름을 사칭하게 된 것입니다.

    김일성 이름은 진짜론자들의 주장처럼 보천보 사건 때문에 유명해진 게 아니고 그 훨씬 이전부터 풍문으로 널리 퍼진 이름이었습니다. 신문에 난 보천보 사건의 기사 때문에 김일성 이름이 유명해진 거라면 보천보 김일성이 죽었다는 기사도 많이 났으니 사람들이 그가 죽었다는 것도 알았어야 합니다. 당시는 문맹률도 높고, 대부분 인구가 농어촌 지역에 사는데 교통 통신망도 열악해 신문 보급망도 제대로 갗추어 지지 않았지요.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은 도시의 인텔리층 극소수 였고, 대부분 사람들은 농어촌에서 바깥일과 담쌓고 살며, 외부 소식은 장터나 학교 같은데서 풍문으로 조금 얻어듣는 때였습니다. 유명한 김일성 장군의 이름도 언론 보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런 풍문을 통해 오랜 시간동안 구전으로 퍼져 많은 사람들이 듣게된 것입니다.

    실제로 해방 직후에 김성주가 김일성을 처음 사칭할 때 보천보 사건을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전설적 김일성 장군을 사칭하다 보니 구체적 항일 행적이 필요했고, 별것도 아닌 보천보 사건을 과장해서 엄청나게 선전해댄 결과 보천보 사건이 유명해진 거지요. 1960년대까지도 보천보 김일성이 죽었다고 일제시대에 보도된 걸 알고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일성 열전에서 이명영 교수가 처음 다시 찾아내어 밝힌 것 같습니다.

    김성주는 1939~40년간에는 실제로 김일성(金日成) 이름을 쓴 것은 맞지만, 해방전 5년간 소련군에서 진지첸으로 행세했습니다. 국내에 김일성 장군 이름이 유명해지는데 김성주가 기여한 바는 전혀 없습니다. 보천보 김일성은 어쩌면 조금은 기여한 바가 있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알려진 이름이지요.

    김일성 이름과 관련하여 김성주가 사칭한 건 전설적 김일성 장군의 이름과, 보천보 김일성의 항일 전과 두가지 입니다. 뭐 물론 북한의 김일성 항일 역사라는게 죄다 창작 역사 소설이긴 하지만요. 평양의 김일성 장군 환영대회에 참가했던 월남민들은 김성주가 가짜 김일성이라는 걸 명백히 알고, 증언도 남겼지만 그 분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노쇠해 사회적 영향력을 잃을 즈음부터 사이비 학자들이 가짜를 진짜 김일성으로 둔갑시킨거죠. 보천보 김일성이 죽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만으로도 사이비 학자들의 김일성 진짜 주장은 폐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국내 학계는 종북 좌파들이 장악하고 있으니 새로 나온 모든 자료들이 아직도 학계에서 외면 당하고 있는 거지요.
  • Mediocris 2016/02/03 13:29 #

    김혜순이 북괴 김성주의 전처라는 유성철의 증언은 혜산사건 김혜순과 엮으려는 김성주의 소설이겠지만, 들었다는 시점조차 88여단 시절인지 해방 후인지 애매합니다. 그런 증언을 바탕으로 김혜순을 북괴 김성주의 전처라고 믿는다면, 나카지마 공작대장의 증언도 믿어야 합니다. 이명영 교수의 김일성열전 312~320페이지를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보고 판단하십시오.

    김혜순이 고문을 받았다는 정황은 없습니다. 일제가 항일투사를 무조건 고문했으리라는 선입견을 앞세운 역사 해석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나카지마의 증언에서 김혜순은 “북괴 김일성의 처가 아니다”가 아니라 “제2방면군장 김일성의 처”라고 증언함으로써 북괴 김성주의 처가 아님을 증언했습니다. 김혜순이 북괴 김일성의 처가 아니라고 증언할 이유가 없습니다.

    김혜순을 북괴 김성주의 전처라고 가정해도, 제2방면군장 김일성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으므로 김정일이 아버지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김혜순을 그렇게 철저하게 부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로 꾸며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세기와 더불어’에서 김혜순, 한성희, 한영숙, 한영애는 김성주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물들입니다.

    1938년 이후의 북괴 김성주가 김일성이라는 주장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제6사장 김일성이 사살되고 제2방면군장 김일성도 일제의 치안숙정공작에 의해 궤멸되어 도주한 상황이라면 남아있는 졸개 김성주가 김일성이라고 칭명하든 안 하든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제 의도는 이후 북괴 김성주가 제6사장이나 제2방면군장 김일성을 사칭하는 점을 밝히려는 데 있습니다.

    1939년에 촬영했다는 길림성도서관의 김일성 집체사진은 중국 자료가 북한의 날조된 역사를 반영했다는 좋은 사례입니다. 이명영의 김일성열전에서 1940년 4월 6일 김혜순 체포 당시 압수한 물품 중에 있었다고 되어있으나, 1939년에 촬영되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세기와 더불어’ 6권 119페이지에는 1937년 가을에 촬영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마도 이것이 맞을 겁니다.

    김일성이 평남 대동군 출신이라는 1938년 6월 1일자 일제 기록은 함남 경무국장 한동석의 사상공작 강연 내용으로 제6사장 김일성 사망 이후 차명한 북괴 김성주를 지칭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국경에 오래 전부터 김일성이라는 영웅의 전설이 떠돌지만, 알고 보면 금품을 약탈하는 형편없는 무뢰배라는 이야기로 이는 북괴 김성주가 차명할 이유가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 Mediocris 2016/02/03 15:10 #

    사진출처에 관해 이명영 교수의 ‘김일성열전’과 허진(임은)의 ‘김일성왕조비사’와 ‘세기와 더불어’를 비교하여 읽으면 누가 진실이고 누가 거짓인지를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길림성도서관이 등재한 제2방면군장 김일성의 집체사진의 출처는 오직 하나인데, 임은과 북괴 김일성은 다른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사진 속의 제2방면군장 김일성은 당연히, 명백히, 북괴 김성주가 아닙니다.
  • botw 2016/02/04 03:43 #

    유성철은 김일성의 전처 한성희가 일경에 체포되었다고 했을 뿐 김혜순이라고 말하지는 않았고요.

    안경 낀 김일성 사진이 세기와 더불어에 1937년이라고 나왔다면 중국측이 1939년이라 한 것은 북한의 주장을 따르지 않은 것이군요. 다른 경력은 북한의 주장을 따르는 경향이 보이는데 유독 사진만 북한과 다른 주장을 하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사진의 주인공은 김성주라 보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합니다만, 보천보 김일성도 아닐 것으로 봅니다.

    다른 중국측 기록 http://cul.china.com.cn/lishi/2011-09/14/content_4479577.htm 에도 1939년 사진이라 나옵니다.


    그리고 제2방면 군장 김일성이라는 사람은 별개의 인물이라 해도 일반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고, 공적도 알려진 게 없는데다, 김성주가 같은 시기에 김일성 이름을 쓰고 있었으니 그 사람을 굳이 사칭할 이유는 보이지 않습니다.

  • botw 2016/02/04 06:46 #

    안경낀 김일성 사진이나, 체포된 김일성 처 김혜순 등에서 좀 미심쩍은 점은 있지만, 당시 기록으로 보면 제2방면군장 김일성과 북한 김일성은 동일인이라 볼만한 것들도 많습니다.

    반민특위 김창영 증언에 나오는 김일성은 명백히 북한 김일성인데, 노조에 토벌대나 나가시마 공작대의 토벌 대상이었던 것도 명백합니다. 이 사람들이 쫓던 김일성이 두 사람이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일본 국립공문서관의 자료를 검색해보니 제2방면 군장 김일성의 주변 인물들이 북한 김일성의 주변 인물들과 완전히 동일합니다. 단정을 내리지는 않겠지만 두 사람은 동일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http://botw.egloos.com/11202471

    일본 국립공문서관 아시아 역사자료센터 자료입니다.
  • Mediocris 2016/02/04 12:19 #

    유성철 증언이 <전처 한성희가 일경에 체포되었다고 했을 뿐>이라면 한성희가 북괴 김성주의 전처라는 증거를 먼저 제시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고, 들었다는 시점도 불분명하고, 한성희가 전처라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세기와 더불어’에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기술했다면 한성희가 김혜순일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후에는 확실한 증언을 제시하십시오.

    중국측 문헌에 반영된 북한의 날조된 역사서가 반드시 ‘세기와 더불어’로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제시하신 다른 중국측 기록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귀하가 포스팅에서 제시한 자료들로 김일성을 북괴 김성주로 판단하는 이유는 1938년 6월 1일의 한동석의 강연이나 사상휘보 20호에 나오는 김성주와 평안남도 대동군 이라는 주소에 얽매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과 김일성을 사칭하는 북괴 金聖柱가 같은 영역에서 활동했다고 관점을 바꾸시면 어떨까요? 이명영 교수는 이미 40년 전 아날로그 시대에 디지털 자료가 넘쳐나는 지금보다도 훨씬 설득력 있게, 제2방면군장 김일성은 1940년 12월까지 양정우 사후 잔여 간부회의에 참가했다고, 분석했습니다. 1940년경 일제 정보에 나타날 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 botw 2016/02/04 12:49 #

    1939~40년에 김성주가 김일성이라 칭하고 있었던 자료는 1938년 자료, 1939년 사상휘보 자료, 1940년 만선일보 기사나, 김창영 반민특위 증언이나 상당히 많습니다. 그걸 의심한다는 건 말이 안 되고요. 두 사람이 같은 시기에 1로군 간부 역할을 했다면 두 사람의 김일성이 1로군 기록에 동시에 나오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만 동시에 나오는 경우는 단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기록에 나오는 제2방면군장 김일성의 주변인물들이 모두 북한 김일성의 기록에 나오는 주변인물들과 똑 같습니다.

    그리고 북한 김성주가 당시에 분명히 김일성이란 이름으로 행세했으니, 김일성이 두 명이었다면 어느 기록이 어느 김일성의 행적인지 두 사람의 행적을 선명히 구분하기도 어렵게 됩니다.

    김일성의 전처에 대한 의견은 있었는지 없었는지 어느 증언도 100% 믿을만하지 않기 때문에 확언하기 어렵다입니다. 체포된 김혜순이 남편에 위해가 갈 수도 있는 일에 대해 사실대로 정직하게 증언했다고 믿기도 어렵고요. 다른 사람이 납득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사실이라 주장만 한다고 해서 사실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본인은 거짓으로 뒤범벅된 김일성 회고록은 아예 참고하지 않습니다.
  • Mediocris 2016/02/05 08:47 #

    북괴 김성주가 김일성을 사칭했음은 분명하므로 <1938년 자료, 1939년 사상휘보 자료, 1940년 만선일보 기사나 김창영 반민특위 증언>으로 <북한 김성주가 당시에 분명히 김일성이란 이름으로 행세했>고 여러 기록에 나타난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천보 야습을 지휘한 제6사장 김일성은 아니>라는 가짜 김일성을 밝히는 주장과 그리 큰 관련성도 의미도 없습니다.

    <1938년 자료, 1939년 사상휘보 자료, 1940년 만선일보 기사나 김창영 반민특위 증언>으로 <북한 김성주가 당시에 분명히 김일성이란 이름으로 행세>했대서 김성주가 제2방면군장 김일성이 되지 않는 것은 이종석, 서대숙, 신주백이 제시하는 수많은 주장과도 마찬가집니다. 그런데도 1938년 이후의 북괴 김성주가 김일성이란 주장을 반복하는 귀하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북괴 김일성이 아닌 제2방면군장 김일성이 따로 존재했다면 <1939. 10~1941. 03 三省 討伐成果>는 북괴 김일성이 <소련으로 도주하고 난 뒤>의 상황이고, 따라서 표에 나와야 하는 제2방면군장이 없으니 제2방면군장 김일성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분석은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도 제2방면군장이란 인물이 북괴 김일성과 별개로 나타나지 않은 이유가 의아합니다.

    그래서 흔히 제2방면군장 김일성의 사진으로 알려진 집체사진에 대해서 다른 각도로 해석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귀하가 북괴 김성주의 처라고 고집하고 있는 김혜순과도 매끄럽게 연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김혜순, 한성희, 한영숙, 한영애는 본처 김정숙과는 달리 김정일의 정통성 시비와는 관계 없는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12권에도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거짓으로 뒤범벅된 김일성 회고록은 아예 참고하지 않>는 귀하의 태도를 존중합니다. 그에 맞게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6권 119페이지에 나오는 안경 쓴 근시의 제2방면군장 김일성의 집체사진 촬영일자인 1937년 가을이 거짓이고, 길림성도서관에 나오는 촬영일자 1939년이 진실이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북괴 김성주가 김일성이 아니라는 명백한 자백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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