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 김성주를 진짜 김일성으로 만든 사이비 학자들 김일성비평

국내외 김일성 관련서적을 읽어가며 가짜 김일성의 연보를 만드는 작업이 벌써 한 달을 넘었다. MS 워드 A4 기본형으로 빽빽한 30쪽이니 책으로 출판하면 60페이지는 훌쩍 넘으리라. 공들여 작성한 연보는 김일성에 관한 주장의 허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게 한다. 연보를 작성하는 틈틈이 가짜 김일성을 입증하는 핵심 내용으로 이미 여러 개의 포스팅을 내놓았다. 그것만으로도 북괴 김성주가 가짜 김일성이라고 단정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일성이 가짜라는 주장이 반박되지 않을 결정적인 증거를 찾기 위한 연보 작업은 계속된다.

가짜 김일성 연보 작성을 위해 김일성이 가짜가 아니라고 주장한 사람들의 문헌도 많이 읽었다. 그들은 다양한 논리로 김일성은 가짜 아닌 진짜라고 주장했지만, 결론은 그들끼리의 ‘사료 돌려먹기’에 불과했다. 신주백, 이종석, 서대숙, 이재화, 와다 하루키, 브루스 커밍스 등은 그들의 사료를 돌려가며 인용하는 방법으로 북괴 김성주가 진짜 김일성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E.H. Carr가 말한 ‘끼리 집단’의 추종자(seconder)나 후원자(sponsor)들이다. 이들의 어떤 잘못된 주장을 깨뜨려도 잘못된 주장에서 파생된 다른 진짜 김일성론이 활개를 치는 이유다.

하찮은 사건 기록이 추종자나 후원자에 의해 역사가 되는 과정은 Carr의 ‘What is history’의 앞머리에 나오는 1850년 스탤리브리지 웨이크스에서 싸구려 물건을 팔던 상인을 무뢰배가 말다툼 끝에 죽인 사건을 읽어보면 이해하기 쉽다. 그런 부류인 진짜 김일성 주장자 중 누가 먼저 기록을 잘못 해석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들에겐 북괴 김성주가 가짜 김일성이라고 주장하는 이명영, 허동찬의 사료 해석은 정치적이라거나 일제의 허위정보라면서도 자신들은 일제의 정보를 인용하거나 북한의 날조된 사료가 반영된 중국 문헌을 인용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에게서는 자신들의 사료 해석도 잘못될 수 있다는 겸손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겸손은커녕 이명영 교수의 가짜 김일성 연구를 ‘반공이데올로기 조작에 편승한 필생의 학문적 업적’으로 조롱하거나, 김일성은 두 사람이라는 허동찬 교수를 ‘궁지에 몰린 나머지 최후의 안간 힘을 쓴다’고 매도했다. 자신과 반대되는 주장을 근거에 의해 비판하지 않고, 인신공격을 앞세우는 이런 자들은 학문하는 자들이 아니다. 북괴 김성주가 가짜 김일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매도하고 조롱하는 그들의 글에는 주저함이 없다. 신주백의 도전적 제목도 그래서 가능하다.

그들끼리 사료를 돌려먹는 사례에 김성주가 1931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런 황당한 주장은 와다 하루키의 ‘金日成’에서 비롯한다. “1931년 초 조선혁명군 길강성 지휘부에 속한 부대에 있었던 김성주는 부대가 괴멸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사는 안도로 돌아왔다. 1912년생인 그는 여기에서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고 기술했다. 와다는 각주에 “1935년 12월 20일 위증민의 보고에 '1931년 입당'이라고 씌어있다”고 했다. 와다는 1941년 3월 8일 병사한 위증민이 남긴 보고서가 어떤 형태로 출판되었다는 인용 전거도 없이 그렇게만 적어놓았다.

와다의 주장은 헛소리다. 1930년 여름부터 이종락의 부하가 되어 길림성 카륜, 오가자를 떠돌며 세금 명목의 금품을 갈취하던 김성주는 반국민부파 이종락의 사주를 받아 1930년 11월 18일에 김좌진 암살 이후 국민부 한족자치연합 회장직을 계승한 정신(鄭信)과 중국인 2명을 길림성 대유수에서 살해하는 소위 길흑농민동맹 사건을 저지른다. 이후 김성주는 오가자를 떠나 하얼빈 등지를 떠돌다 1931년 여름에야 안도로 돌아와, 안도현 경찰대장 목한장의 양자가 되어 안도, 무송 등지에서 깡패 노릇을 계속한다. 김성주가 중공당에 가입할 수 없는 이유다.

와다 하루키가 인용 전거도 없는 황당무계한 기록을 남기면 이종석이나 서대숙이 입증된 사실처럼 재인용한다. 그래서 ‘사료 돌려먹기’라고 표현했다. 확인되지 않은 기록을 사실처럼 기술하면 그들끼리 돌려가면서 인용하는 수법과 ‘권위자’의 기록을 ‘권위자’가 다시 인용하는 방식으로 북괴 김성주는 진짜 김일성이 되어갔다. 이런 사례는 부지기수다. 그래서 신주백, 이종석, 서대숙, 와다 하루키, 브루스 커밍스는 북괴 김성주를 진짜 김일성으로 만든 사이비 학자들이다. 작은 거짓말이 서로 돌려먹는 과정에서 눈덩이처럼 커진 괴물이 가짜 김일성이다.


덧글

  • Mediocris 2016/01/26 11:20 #

    다섯 번째 문단의 '괴멸'은 아무리 봐도 ‘潰滅’이 틀림없다고 생각되는데 이종석이 ‘괴멸’로 번역(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86쪽)했기에 그대로 옮깁니다. ‘괴이한 소멸’로 이해하려다 아무래도 찜찜해서 와다의 원서를 주문했습니다. 유별난 결벽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무튼 쓸데없는 비용만 자꾸 지출되고 있습니다. 전번 포스팅에서도 말했듯이 뉴스(news)비평 밸리에 잠깐 머물게 했다가 구문(oldies)이 되면 역사 밸리로 옮길 예정입니다.
  • botw 2016/01/26 14:31 #

    괴멸(壞滅)이란 단어가 ‘潰滅’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기는 합니다.
    괴멸(壞滅) [명사] 조직이나 체계 따위가 모조리 파괴되어 멸망함.

    용법의 차이로는 "아군이 적군을 '괴멸'시켰다.", "지도부를 잃어버린 반란군은 스스로 '궤멸'하였다."와 같은 사례를 드는 것 같습니다.
    이종석의 문장에서는 '궤멸'이 맞을 듯 합니다만...애매하네요.
  • Mediocris 2016/01/26 15:56 #

    와다의 원서가 도착하면 무슨 의미인지 판명되겠지요.
  • Mediocris 2016/01/28 13:41 #

    원서가 도착했습니다. 96페이지에 潰滅 아닌 壞滅로 쓰여있습니다. 괴이한 일본어를 새로 배웠습니다.
  • botw 2016/01/26 14:57 #

    와다 하루키는 1935년에 코민테른에 제출된 동부만주 당 지도자 위증민의 보고에

    “김일성, 고려인, 1931년 입당, 용감 적극, 중국어를 할 수 있음. 유격대원 출신이다. 민생단이라는 진술이 대단히 많다. 대원들 가운데서 말하기를 좋아하고, 대원 사이에서 신뢰와 존경을 받으며, 구국군(救國軍) 사이에서도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

    라고 나온다 하더군요.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86615.html

    그런데 1935년에 김성주가 김일성이란 이름을 쓰고 있었는지도 불분명하고, 민생단이라는 진술이 많다고 하는 것도 이상하지요. 저 기록의 출처도 분명하지 않고요.

    이명영 교수는 1931년 경에 최형우(崔衡宇)가 김성주에게 일성(一星)이란 별호를 지어 주었다고 하고, 1931-03-26 일자 동아일보에 이종락(李鍾洛)의 부하 金一成이 체포되었다고 하고, 1931-05-04 일자 동아일보에 또 한번 나옵니다.

    저 이후로 김일성이란 이름을 계속 썼는지는 명확하지 않고, 김성주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추정됩니다.

    보천보 金日成이 사망한 후에 1938년 6월경부터 김성주가 金日成이라 사칭하고 다닌 것으로 보입니다(일제의 기록). 1939년 사상휘보 같은 것도 이걸 뒷받침하지요. 중국측 기록에도 1938년부터 金日成이란 이름을 썼다고 나오는 것이 많이 보입니다.

    와다 하루키가 말하는 위증민의 보고서가 진짜라면 거기 나오는 김일성은 김성주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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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중문백과 김일성에 1938년에 金一星이란 이름을 쓰다 후에 金日成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金日成 - 中文百科在線

    1938年,任東北抗日聯軍第一路軍第二方面軍(兵力相當於一個營)指揮,在此期間他取名爲金一星,後改爲金日成。1937年6月4日,金日成指揮抗聯第六師攻打朝鮮境内普天堡的日軍守備隊,殺死日本人兩名。

    http://www.zwbk.org/MyLemmaShow.aspx?zh=zh-tw&lid=3891
  • Mediocris 2016/01/26 15:59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나름대로 인터넷 검색을 했었는데 찾지 못하던 정보였습니다. 좀더 세심하게 인터넷 검색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코민테른에 제출된 위증민의 1935년 보고가 어떤 형태로 존재했는지 언급이 없어서 와다의 주장은 믿기 어려울 뿐 아니라, 위증민의 보고에 나온 김일성이 반드시 북괴 김성주를 의미한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金日成이란 이름은 진짜 김일성인 제6사장으로 해석하면 훨씬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명영 교수는 최형우가 一星이란 별호를 붙여줬다고 했지만, 최형우는 해외독립운동소사 31페이지에 조선사회의 새벽별이 되라는 뜻으로 동료들이 그렇게 불렀다고 썼습니다. 최형우의 주장은 소설이며 처음부터 김성주에게 일성이란 호는 없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므로 1931년 3월 26일이나 1931년 5월 4일자 동아일보 기사의 金一成이 반드시 북괴 김성주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북괴 김성주는 1930년 11월 18일 한족총연합회 회장 정신을 살해하고 도주하여 하얼빈 등지를 떠 돌아다니면서 모스크바 유학을 시도하지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건 중공당에 입당이 허락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종락이 중공당에 가입되지 않은 이유도 중공당은 이종락을 민족주의 국민부파로 인식했지 공산주의자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졸개인 김성주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1931년 여름에 안도로 돌아올 때까지 도망자 신세였던 김성주는 중공당에 입당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김성주는 근본적으로 정의부 소속이었던 아버지 김형직의 영향을 받아 오랫동안 민족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조선혁명군 소대장 고동뢰를 죽이고 나서도 뻔뻔스럽게 다시 양세봉 장군을 찾아갈 수 있었던 것도, 목한장의 도움으로 구국군 오의성을 따라다닌 것도 모두 아버지의 후광과 민족주의 성향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여러 가지 사정을 도외시하고 김성주가 1931년에 중공당에 가입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입니다. 날조된 북한 역사를 배려하고 반영한 중국 문헌은 전혀 믿을 게 못됩니다.
  • botw 2016/01/26 17:20 #

    김일성 열전에 김성주가 고동뢰 소대장 일행을 살해했다는 대목에서 당시 김일성(一星)이란 이름을 쓰고 다녔다고 했습니다. 이건 이명영 교수가 최형우 책보고 한 말이 아니라 당시 김성주를 알고 증언했던 이시찬씨등이 한 말로 보입니다. 증언자들이 김일성(一星)이란 이름을 쓰고 다녔다고 했다면 사실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종락 부하에 김일성이란 이름을 쓰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한 걸로 보입니다. 북한 측에서도 동아일보의 저 체포기사는 김성주의 일로 간주하고 기사를 인용하고 있지요. 이종락 부하라는 말만 삭제한 채로요.

    http://dongne.donga.com/2010/11/30/d-story-60-%EA%B9%80%EC%9D%BC%EC%84%B1-%ED%9A%8C%EA%B3%A0%EB%A1%9D-%EC%86%8D-%EB%8F%99%EC%95%84%EC%9D%BC%EB%B3%B4/
  • Mediocris 2016/01/26 21:34 #

    김일성열전 108쪽에 고동뢰 소대장의 상관인 이병근 중대장의 아들 이시찬의 사진과 증언이 있습니다만, 김성주가 金一星이라는 이름을 썼다는 증언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143쪽엔 저자인 이명영씨가 이종락 부대 궤멸 후 도망 다니다가 무송에 다시 나타나 金一星이란 이름을 썼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만, 그것이 김성주가 金一星이란 이름을 썼다는 확증이 될까요?

    1931년 3월 26일 체포 기사와 1931년 5월 4일 이송 기사의 金一成을 북괴 김성주로 인정한다면 이종락 체포 당시 김성주만 도망갔다는 사실과 김성주도 인정하는 하얼빈에서의 모스크바 유학 시도 사실도 부인됩니다. 세기와 더불어 2권 123쪽엔 장춘 감옥에 20일 동안 갇혔다가 출감 후 1931년 6월에 어머니가 있는 안도로 돌아왔다는 시기는 대충 맞아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집단 입당이 가능한 소속 부대도 없고 개별 입당을 보증할 후원자도 없는 김성주가 출감 이후 중공당에 입당했다는 위증민의 보고는 허위입니다. 출감 이후에도 김성주가 중공당에 접근했다는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도 귀향 이후로는 양부 또는 계부인 목한장의 양자 신분으로 새날 그룹들과 어울려 무장 깡패 노릇을 하는 게 고작입니다.

    제 결론은, 1931년 3월 26일 체포 기사의 金一成을 북괴 김성주로 인정한다 해도, 그건 김성주가 중공당원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1930년 5월 30일 간도폭동 이후 계속된 공산폭동에 대한 장학량 정권의 일제 단속에 외관상 공산주의를 표방했던 이종락의 부하인 김성주가 걸려들었고, 그걸 <’위증민’이란 이름>으로 김성주의 공산당 입당으로 단정지었다고 추측합니다.
  • Mediocris 2016/01/26 22:11 #

    和田春樹의 회고록에 있는 1935년 보고의 위증민은 가상의 인물로 판단됩니다. 이종석은 1992년 3월 26일에 탈고된 和田春樹의 金日成と滿洲抗日戰爭을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수시로 和田春樹와 연락했으며, 일본어 원서에 없는 내용까지 삽입했다고 합니다. 이종석의 번역 종료 시점은 1992년 8월이고 창작과비평사의 초간 발행은 1992년 8월 15일입니다. 그렇다면 저자 서문에도, 1991년 방문 시에도 알았던 동만특위 보고 내용이 번역서 각주엔 왜 없을까요? 코민테른을 언급한 공산당문헌은 북괴의 날조가 반영된 僞書이기 때문입니다.
  • botw 2016/01/27 09:51 #

    저 자료는 전거도 분명치 않으니 별로 믿을만한 게 못되는 것 같습니다.
    김성주의 당시 행적으로 보아 1931년에 중국 공산당 가입은 사실이 아닌 걸로 보입니다.

    이명영 교수는 김성주가 감옥에 갇힌 일은 없다고 했지만, 손정도(孫貞道, 1872년 7월 26일 ~ 1931년 2월 19일) 목사 관련 기록들 보면 손목사가 감옥에 갇힌 김성주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고, 출옥후 뒤를 봐 줬다고 하지요. 이건 김일성 회고록에 나오는 말이라고 하니 맏을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시간적으로는 동아일보의 김일성 체포기사보다 이전의 일이 되는 것 같습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6%90%EC%A0%95%EB%8F%84 : 맨 아래 김일성 관련 내용

    김일성이 진짜가 맞다는 사람들이 그걸 뒷받침할만한 제대로 된 자료를 제시한 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1939년 사상휘보 자료도 김창순씨가 1977년에 처음 찾아낸 거더군요.
    김창순씨는 김성주가 전설의 김일성 장군이 될 수 없으니 가짜라고 인정하지만, 보천보 사건의 당사자는 맞다고 한 것 같더군요.
  • Mediocris 2016/01/28 13:43 #

    저 역시 1차 원문 사료를 볼 수 없는 입장이므로 2, 3차 저술 사료로 판단하는 어려움은 있습니다만, 김일성 진위를 논할 때는 진영이나 입장을 떠나 정확한 사료 비판을 전제해야 합니다. 1980년대 중국 역사의 르네상스기에 대폭 쏟아져 나온 중국 공간 문서는 물론 사간 문서도 북한의 날조된 역사가 반영된 것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극히 조심스럽게 다뤄야 합니다.

    위키피디어의 손정도 목사 항목은 전혀 믿을 수 없는 거짓입니다. ‘세기와 더불어’ 2권 223쪽에 김성주는 1930년 5월 초에 7개월의 길림 감옥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감했다고 썼습니다. 그렇다면 1929년 11월 초에 체포되고 수감되었다는 이야기인데, 당시의 김성주는 이종락의 지시에 따라 주창, 최봉 등과 함께 남만학원에 입학하여 반국민부 활동을 벌이고 있던 때입니다.

    이에 국민부 중앙에서는 민족계열로 출발한 남만학원이 공산계열 재중청총의 영향을 받아 좌경화되었다고 보고 숙정작업을 벌여 지운산, 이광선 등 6명을 체포하여 총살하는 이른바 남만참변을 일으킵니다. 김성주는 이에 놀라 오가자를 탈출하여 카륜으로 갑니다. 이후로도 김성주가 국민부에 의해 체포되었다거나 동북정권에 의해 수감되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더구나 1930년 3월 3일 흥경현 왕청문에서 열린, 논란이 많은 남만청총을 해체하고 동성농민총동맹을 결성하는 국민부 회의에서 김성주는 동성농민총동맹 안도, 무송지부 조직위원으로 임명됩니다. 이걸 이종석 등 진짜 김일성론자들은 김일성의 경력으로 자랑하기도 합니다.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할 김성주가 어떻게 국민부 회의에 참석하고 임원에 선출될 수 있습니까?

    북괴 김성주 관련 항목 중에 제일 확실한 것은 1931년 3월 26일 자 동아일보의 김일성 체포기사입니다. 그것이 김성주가 중공당에 가입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중에 ‘金日成’으로 읽힐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동아일보 기사 같은 메타 사료는 의외로 소홀히 다뤄지는 반면 출처 불명의 중국 문헌이나 날조된 북한 역사서만 판치고 있습니다.
  • botw 2016/01/29 11:43 #

    한국의 대다수 연구자들이 간과하는 것 중에 아주 중요한 사항이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김성주가 만주나 소련에 있을 때 몸에 밴 일상 언어는 중국어였고, 한국어는 상당히 더듬거렸습니다.

    그가 사용했다는 이름들 金一星, 金一成, 金日成 등은 우리말 발음으로는 모두 동일하니 연구자들이 한자만 약간 다를 뿐 같은 이름 아니냐는 식으로 간주합니다만, 김일성의 당시 언어였던 중국어로는 세가지 모두 글자는 물론이고 발음이 다른 이름이며, 전혀 다르게 이름을 개명한 것입니다.

    이에 관한 포스트를 하나 올렸으니 참고하십시오.

    http://botw.egloos.com/11202366
  • Mediocris 2016/01/29 13:52 #

    우리말 발음이 비슷하다고 연령, 지위, 활동범위가 다른 사람을 북괴 김일성이라고 우기면 안 되겠지요. 1931년 3월 26일자 동아일보 체포기사에 나오는 金一成이야말로 북괴 김성주와 관련하여 유일하게 확실한 사료 항목이지만, 그것이 바로 金日成으로 불렸다는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북괴 김성주를 진짜 김일성으로 만든 모든 사단은 이종석, 와다, 서대숙 등이 왕청현 유격대의 정치위원이 김일성이었으며 나중에 제2군 독립사 3단 정치위원이 되었다는 제멋대로의 해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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