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김일성이 중국 항일투쟁사에서 무시되는 이유 김일성비평

가짜 김일성 입증의 핵심인 <동북항일연군 가담 시점에 대한 포스팅>에 앞서 중국 항일투쟁사가 북괴 김일성을 무시하는 이유를 먼저 싣는다. 북괴 김성주의 동북항일연군 가담 시점은 가짜 김일성의 결정적 증거이므로 내용에 신중을 기하려고 자료를 보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주제국 분성지도 및 지명총람(滿洲帝國分省地圖竝地名總攬)이라는, 한국에서 무려 150만원에 팔리는 1943년판 지도집도 일본에서 새로 구입했다. 북괴 김성주의 만주에서의 활동 경로는 가짜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 가담 시점을 밝혀주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이종석은 ‘현대북한의 이해’ 450페이지에서 <중국 중국문헌들이 김일성을 거명하지 않는 이유는 김일성이 중국공산당의 지휘계통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배려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펴고 있다. <‘위만주국사’나 ‘동북항일연군 제2군’과 같은 중국문헌을 보면 후기 형식으로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는 변명은 날조된 북한 항일투쟁사를 반영했다는 고백일 뿐이다. 아무리 김일성 항일투쟁을 긍정한다지만, 견강부회도 이쯤 되면 학문이 아니라 병적 신념이다.

중국 항일투쟁사가 가짜 김일성의 항일투쟁 경력을 무시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북괴 김성주의 만주에서의 항일투쟁 경력은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김성주는 만주에서 벌어진 거의 모든 중국의 항일무장투쟁을 자신의 경력으로 날조했다. 혼자만의 경력으로 날조된 가짜 김일성의 무장투쟁 경력은 중국의 항일투쟁을 모조리 부정하게 된다. 날조된 가짜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중국의 항일무장투쟁사에 참여시키면 그건 역사가 아니라 엉망진창 뒤죽박죽의 거짓이 되어 버린다. 중국의 항일무장투쟁사가 북괴 김성주를 무시하는 이유다.

북괴 김성주가 중국의 항일무장투쟁을 자신의 경력으로 날조한 사례를 알아보자. 먼저 1933년 3월 30일부터 4월 1일까지 3일간 간도성 왕청현 소왕청에서 중공당 동만특위 서기 동장영(童長榮) 지휘 아래 일본군 200명을 사살하고 대소화기 259정과 박격포 4문과 탄약 2만발 이상을 노획하는 엄청난 전과를 올린 소왕청전투(중국 동북항일열사전 2권 124)가 있다. 이것을 북괴 김성주는 소왕청 뾰족산으로 침공하는 일본군을 날짜조차 틀린 1933년 4월 17일부터 3일간의 전투에서 400명을 살상했다고 변조했다(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3권 52).

소왕청 전투의 날조는 김성주의 아부자들이 시작했다. 잔인한 숙청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짐작된다. 1933년 4월 17일이라는 날짜는 1959년에 발간된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 3권의 박두경의 회상기 2페이지에서 비롯된다. 이후 소왕청 전투의 날짜와 내용은 화려한 진보와 변신을 거듭하다가, 북괴 김성주와 그의 항일투쟁 동료들의 회상기나 전기의 완결판이라고 볼 수 있는 소위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는 ‘4월경’으로 최종 낙착되었다. 중국 항일투쟁사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리라.

이때 북괴 김성주는 어디 있었을까? 그것이 바로 <김성주의 동북항일연군 가담 시점>의 핵심 내용이다. 김성주는 1932년 3월부터 시작된 일본군의 대토벌작전(제1기 치안숙정공작)을 피해 소왕청 남쪽 60km 두만강변에 숨어있었다. 소왕청 전투에 참가할 수 없는 이유다. 이처럼 북괴 김성주의 만주 항일무장투쟁은 입증된 전투가 없다. 한마디로 북괴 김성주의 전기나 회고록에 나타난 100 번 싸워 100 번을 모두 이겼다는 항일무장투쟁 경력은 전부 거짓이라고 단언해도 좋다. 이번엔 김성주 항일투쟁 날조의 끝판인 소왕청 방어전을 살펴보자.

소왕청 방어전이란 1933년 11월 18일에 일본군 제19사단이 보병, 기병, 포병, 비행기와 병력 5,000명으로 소왕청을 공격했으나, 북괴 김성주가 지휘하는 50명의 항일 유격대원이 40일 동안 싸워서 방어했다는 중국 항일투쟁사에도 없는 기상천외한 전투다. 소왕청 방어전은 1959년판 전투 회상기 1권이나 한설야의 ‘영웅 김일성 장군’을 비롯한 1950년대의 어떤 기록에도 없었지만, 1960년판 전투 회상기 2권 5면에 박두경의 회상으로 갑자기 등장했다. 병력 5,000명은 너무 과하다 싶었던지 1992년판 ‘세기와 더불어’ 141면에선 ‘대병력’으로 고쳤다.

이때도 김성주는 두만강변에 숨어있었다. 김성주와 관련한 전투 회상기나 ‘세기와 더불어’에는 일반적 전기나 회고록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 있다. 사건과 전투의 정확한 날짜를 기록하지 않는 것이다. 남의 전투를 훔쳐오고 없는 전투를 날조하면서 날짜를 명기하기는 곤란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날조, 변조된 가짜 김일성의 항일투쟁 기록을 중국이 자신들의 항일무장투쟁사에 참여시킬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판단된다. 그나마 북괴 김성주를 가짜 김일성으로 명시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항미원조 정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할 수 있겠다.


덧글

  • Mediocris 2016/01/18 22:53 #

    가짜 김일성 추적 포스팅을 왜 굳이 뉴스비평 밸리에 올리는지 궁금한 분들이 계시리라 짐작됩니다. 과거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뉴스(news)라고 생각합니다. 베네데토 크로체가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고 말한 이유도 이런 의미라고 판단합니다. 뉴스비평 밸리에 잠깐 머물다가 구문(oldies)이 되면 역사 밸리로 옮길 예정입니다.
  • Mediocris 2016/01/18 23:17 #

    트랙백한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길림성 왕청현 당안국 역사연구소 소장이라는 사람은 <뾰족산의 1934년 3월 전투도 김일성 장군이 지휘한 거고, 4월 전투도, 33년 12월 중순 전투도 기본상 김일성 장군이 지휘한 전투였다>고 하는군요. 기초 중의 기초사항인 발생년도조차 헷갈리면서 무슨 역사를 탐구한다고 하는지, 기가 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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