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김일성의 증거 사상휘보와 진짜 김일성의 죽음 김일성비평

김일성 진위 논란에서 <진짜 김일성>이라는 용어는 <1937년 6월 4일 보천보 습격을 지휘한 동북항일연군 제6사장 김일성>이라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북괴 김성주는 <가짜 김일성>이다. 북괴 김성주는 <1937년 6월 4일 보천보 습격을 지휘한 동북항일연군 제6사장 김일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혜순이 북괴 김성주의 아내가 아니라는 포스팅>만으로도 가짜 김일성 논란은 종결되어야 하며, 이명영 교수 등의 기존 연구만으로도 북괴 김성주를 가짜 김일성으로 단정할 수 있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북괴 김성주가 진짜 김일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종석, 서대숙 등 북괴 김성주가 진짜 김일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북괴 김일성이 항일투쟁 경력은 과장했지만, 1937년 6월 4일 보천보 습격을 지휘한 동북항일연군 제6사장임에는 틀림없다”는 그럴듯한 논리를 전개한다. 이런 주장은 북괴 김성주가 독재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항일투쟁을 과장했다고 정당화(회피)하면서 <북괴 김성주는 1937년 6월 4일 보천보 습격을 지휘한 동북항일연군 제6사장인 진짜 김일성>이라고 날조하는 궤변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북괴 김성주가 1937년 6월 4일 보천보 습격을 지휘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종석은 동성농민총동맹(東省農民總同盟)에 관한 일본총영사의 보고에 金成柱라는 이름이 나온다며 진짜라고 주장하지만, 金成柱 아닌 북괴 金聖柱는 진짜 김일성이 아니다. 북괴 김성주가 진짜 김일성이라고 하는 이종석(현대 북한의 이해 446페이지)의 진짜 근거는 혜산사건(惠山事件)에 관한 1939년 8월 31일자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의 사상휘보((思想彙報) 제20호 보고서다. 혜산사건이란 1937년 9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일제 경찰이 김일성 부대의 보천보 습격 이후 국내 연계세력인 조국광복회 회원 188명을 색출하여 기소한 사건이다.

우선 사상휘보 20호 9페이지의 내용을 살펴보자.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본명 김성주(金成柱) 당년 29세의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고평면(古坪面) 남리(南里) 출신으로 어릴 때 부모를 따라 간도(間島) 방면으로 이주하여 동 지방에서 자라 비단(匪團)에 투신한 조선인이라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현재 그 실모(實母)는 생존해 있는 모양이다.> 사상휘보 20호의 내용을 피상적으로만 판단하면 북괴 김성주를 제6사장 김일성으로 착각할 수 있으나, 사상휘보 20호는 혜산사건(惠山事件)의 수사나 재판기록이 아닌 조선총독부 검사국(檢事局)의 보고서에 불과하다.

사상휘보의 내용에서 북괴 김성주에 일치하는 것이라곤 주소뿐이고 나머지는 엉성하기 그지 없다. 사상휘보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즉 보천보 김일성에 관한 정보는 소문에 불과하지만 <가장 확실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북괴 김성주는 보천보 습격 당시 25세였으며, 어려서 이주한 무송(撫松)은 동북인 간도가 아니라 남만주다. 북괴 김성주의 어머니 강반석(康盤石)은 1932년 6월 5일에 죽었다. 혜산사건판결서(金正柱 編, 朝鮮統治史料 第6卷, 東京, 韓國史料硏究所, 1970)도 金成柱라는 이름 외에 북괴 김성주에 관한 정확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

사상휘보 20호의 이런 착오는 보천보 김일성은 체포되지 않았고, 혜산사건의 피고인이 아니었으며, 김일성의 정확한 신원은 혜산사건 피고들의 유무죄를 다투는 법원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은 보천보 김일성의 신원이 조사된 함흥경찰의 신문조서(訊問調書)가 아닌 함흥지법 검사국의 보고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고, 함흥지법 검사국이 보천보 김일성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1937년 동북만주나 남만주에서 김일성이란 이름을 쓰는 비적들은 북괴 김성주 외에도 많았기 때문이다.

보천보 김일성은 1937년 11월 13일에 죽었으며 북괴 김성주도 1939년 이전부터 김일성으로 행세하고 있었으므로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은 두 사람을 동일 인물로 착각했을 뿐이다. 혜산사건판결서는 지금도 북한의 함흥법원에 남아 있지만, 가짜 김일성 논란을 일거에 가라앉힐 수 있는 중요한 근거 자료를 북한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혜산사건판결서에 나온 보천보 김일성은 북한 김일성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총독부 정보를 근거로 북괴 김성주가 진짜 김일성이라고 주장하는 이종석은 제6사장 김일성의 사망기사는 일제에 의한 오보라고 주장한다.

진짜 김일성인 제6사장이 안도현 양목정자에서 사살되었다고 보도한 경성일보는 일제 정보를 기사로 옮기는 조선총독부 기관지다. 경성일보의 김일성 사살기사가 오보라면 사상휘보도 오보라야 한다. 경성지법 검사국의 1937년 11월 19일자 <治安狀況 第26報∼第43報  鮮外情報 共匪 金日成 射殺의 件>이라는 만주군 제7단의 보고는 더욱 신중하다. 김일성의 수급을 취했으나, 진짜 김일성인지 확인해봐야 한다는 내부 보고는 오보일 수 없다. 김일성의 수급은 김일성을 잘 아는 주민에 의해 진짜 김일성으로 확인되었다는 일본군 토벌 당사자의 증언이 있다.

보천보 습격 사전 모의 때문에 여러 차례 제6사장 김일성을 만난 박달과 박금철은 북괴 김성주의 사진을 보고 제6사장 김일성이 아니라는 일관된 증언을 남겼다. 제6사장 김일성의 사망기사가 오보라고 부정하고 북괴 김성주가 진짜 김일성이라고 주장하는 이종석은 제2방면군장 김일성의 승명(이름 계승)은 시간적, 지리적 요건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가짜 김일성을 부정했다. 동북항일연군 내에는 여러 명의 김일성이 있었으므로 이명영 교수처럼 굳이 소련에서 돌아와 승명했다고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명영은 이종석에게 공격의 빈틈을 내줬을 뿐이다.

동북항일연군 내에는 여러 명의 김일성이 같이 싸웠기 때문에 제6사장 김일성이 죽으면 다른 김일성, 이를 테면 제2방면군장 김일성이 새로 김일성이라고 주장하면, 그게 바로 승명이다. 1937년 전후로 김일성 또는 김일성 일파의 국경지대 습격이 빈번한 이유다. 제6사장 김일성이 사망하지 않았다면 제2방면군장 김일성과 동일 인물일 수도 있다. 제6사장의 사망이나 승명과 관계 없이 북괴 김성주는 진짜 김일성이 아니다. 북괴 김성주는 1937년 봄에 찍었다는 제2방면군장 시절의 김일성 집체사진조차 조작함으로써 진짜 김일성이 아니라고 자백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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