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키호테 오세훈, 승부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 인물비평집

오후 4시 20분 집 근처 중학교에서 주민투표를 했다. 투표종사원들이 한가로이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투표지 배부 종사원이 얼마나 왔느냐고 물었고, 번호 확인 종사원이 1,500명이 안 된다고 대답했다. 명부 확인 종사원이 개표는 할 수 있을까를 물었고, 옆 자리의 종사원이 3시 현재의 투표율이 겨우 15% 이니 개표는 어려울 거라고 대답했다. 투표장을 나서는 마음이 울적했으나 담담했다. 길 위엔 가을빛을 탐하던 모험심 지나친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말라가고 있었다.

근린공원 벤치에 노숙자가 누워 있었다. 나이도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새까만 얼굴에 두꺼운 겨울 옷을 입고 몸을 구부린 채 죽은 듯 자고 있었다. 서울역에서 노숙자를 내쫓았다더니 풍선효과가 예까지 미쳤나, 전에 없던 노숙자가 웬일일까? 복지가 모자라서 노숙자로 머무는 경우는 드물다. 노숙은 그들 나름의 자유다. 그들은 규제를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다. 어떤 정부도 모든 노숙자의 복지를 만족시켜 줄 수 없다. 아무리 퍼주어도 모자라는 것, 복지란 원래 그런 것이다.

마무리 단계의 박정희 기념관 옆을 지나며 박근혜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이젠 박근혜에 대한 마음을 접어야겠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된다. 어정쩡한 복지 패러다임에 양다리 걸치고 좌우의 표를 모두 얻겠다는 얄팍한 계산으로 보수를 외면했다. 어쩌면 대통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제 발등 찍고도 허수아비 대통령 되기만 하면 그만인가? 오세훈과 박근혜, 누가 더 박정희를 닮았을까? 옳으면 옳고, 틀리면 틀리다고 말해야 진정한 지도자다.

경선에서 박근혜가 이명박의 술수에 말려들어 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민투표에 대한 비겁한 침묵을 보고 착각임을 깨달았다. 박근혜는 이명박에게 그릇이 모자랐다. 이젠 오세훈의 그릇에도 미치지 못한다. 오세훈 지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음을 박근혜는 몰랐나? 거침없이 돌아가는 포퓰리즘 풍차,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싸움에 오세훈은 단기로 달려들었고, 그리고 졌다. 그러나 오세훈의 진정한 승부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 간지는 우직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모든 사람이 오세훈이 패자라고 조롱한다. 승리에 고무된 민주당은 무상급식이 시대정신이라고까지 말하지만, 나치스가 시대정신이라고 확신한 철학자도 있었다. 시대정신은 변하게 마련이다. 시대정신이 변하듯 인간의 욕구와 선택은 변한다. 무상급식은 인간의 변하는 욕구와 자유로운 선택에 반하므로 반드시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어있다. 노숙자가 규제가 있는 복지시설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오듯, 일방적인 무상급식은 학생들이 참아내기 쉽지 않은 강제 배급 체제다.

무상급식은 욕구와 선택에 반할 뿐 아니라 예산확보도 쉽지 않다. ‘디자인 서울’을 포기하고 원시 친환경 상태로 살아가면 된다지만, 예산 아껴 무상급식에 털어 넣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부자증세 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부자증세가 그렇게 쉬웠으면 벌써 급식세를 거두었을 것이다. 부자가 누구인지 모호하므로 부자증세의 부담 책임은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 어렵게 만든다. 간접세 비율이 50%가 넘는 나라에서 부자증세 타령은 조세귀착 효과를 모르는 헛소리다.

무상급식을 위해 서울시 교육청은 시청이나 구청의 예산 지원을 받아야 한다. 교육청 예산의 대부분은 교사들의 월급이나 시설비로 곽노현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곽노현이 정책 사업에 쓸 수 있는 교육사업비는 2011년도 서울시 교육청 예산의 13.6%인 8996억원이다. 여기서 무상급식 예산 1162억원은 은 교육사업비의 12.9%에 육박한다. 2010년도 급식지원비 132억원은 교육사업비의 2%였다. 곽노현이 서울시 의회에 손 벌리고 구걸하는 것은 비극의 서론에 불과하다.

2011년도 무상급식 예산 50%는 서울시와 각 구청에서 부담하고, 나머지 50% 1162억원을 교육청이 부담한다. 초등학교 전 학년에 무상급식을 하려면 교육청 예산만 간단히 2000억원을 넘는다. 2014년까지 초중등학교 무상급식에는 4000억원을 훌쩍 초과할 것이 예상된다. 교육청 교육사업비의 1/2을 무상급식에 털어 넣어야 한다. 1끼당 2457원에서 식품비 1892원, 우유값 330원을 제외한 인건비 235원을 아끼려고 힘들게 일하던 조리사 아주머니를 내쫓아 생계를 위협한다.

무상급식의 예산이 늘어나면 교육 시설 개선에 필요한 시설사업비는 줄어들게 마련이다. 석고보드 천장을 교체하지 못하니 학생들은 석면 먼지가 포함된 교실에서 공포를 안고 살아간다. 암에 걸려도 좋으니 무상급식으로 배부르게 먹이는 게 교육철학이라면 어쩔 도리는 없다. 재래식 화장실을 고치려고 해도 예산 확보가 쉽지 않으니 문짝이 떨어져 나간 화장실에서 문고리를 잡고 긴장 속에서 볼일을 본다. 시대정신이라던 무상급식의 엽기 스토리는 이게 끝이 아니다.

1끼당 2457원의 강제배급 무상급식이 학생들에게 외면 받는 것은 당연하다. 무상급식 지지자들은 배부른 부자들은 돈 내고 도시락 사먹으라고 독한 소리를 내뱉는다. 부자급식 아니라던 자들이 할 소리가 아니다. 안 그래도 학교 앞에는 배달 도시락 업체가 성업 중이다. 공짜 배급 우유는 몰래 버린다. 선생님은 교실을 뒤지고 우유를 찾아서 복지시설에 기부하는 일거리가 생겼다. 아무리 예산을 퍼부어도 선택과 교환이 없는 독점 배급의 품질 저하는 불을 보듯 뻔하다.

무상급식 포퓰리즘의 예정된 비극을 누군가는 막아야 했다. 복지 포퓰리즘에 양다리 걸치고 대통령의 꿈만 키우는 자가 침묵해도 누군가 무릎이라도 꿇어 막아야 했다. 가식이라고 욕을 먹어도 누군가는 눈물로 막아야 했다. 잘못을 보고도 눈감는 자는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 지도자의 잘못에 침묵하는 국민은 희망이 없다. 그는 한 손으로 거대한 둑을 막고자 했을 뿐이다. 거대한 복지 포퓰리즘을 향해 비루먹은 말에 올라 서툰 창을 겨누었을 뿐이다. 그리고 졌다.

개인의 욕구와 선택을 존중하며 경쟁과 교환에 의한 올곧은 역사의 발전을 위해 싸우다 졌으므로 오세훈은 패배자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며 말렸지만, 오세훈은 정공법을 선택했다. 간교한 계산보다 우직한 승부를 벌이다 지친 그를 장삼이사들은 패배자라며 조롱한다. 언젠간 정치공학보다 속 깊은 민심에 승부를 거는 사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날이 온다.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은 외로운 동키호테, 오세훈의 진정한 승부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


덧글

  • 武究天尊 2011/08/26 01:04 #

    예언을 하는 집단성과 예측을 하는 개인성의 대결이라는 긴 싸움의 중요한 시점에 보신주의 경향을 못벗어난 한나라당 보니 한심합니다..
  • 鷄르베로스 2011/08/26 01:10 #

    누가 오세훈의 후임으로 서울시장을 맡을지는 몰라도 얼마전 티비토론회에서 시장이란 자리는 처리해야 할 부분이 여러가지라는 오세훈의 말이 생각나네요

    자칫 복지라는 때깔좋은 허울로 다른 분야를 소홀히하는 경솔한 오류가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 입니다.
  • 리칼 2011/08/26 07:33 #

    아니나 다를까 다시 무상의료 들고나온 민주당
    박근혜 찍어주는 일은 없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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