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는 민족통일 내전이 아닌 공산괴뢰 침략 한국현대사



한반도 전쟁을 재발을 지원하는 종북 세력

6월 25일은 한반도에서 비참한 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승리도 패배도 없었으니 기념식이 없다고 문제 되지는 않을 것이다. 6,25가 기억에서 지워버리거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나쳐도 되는 사소한 해프닝일까? 6.25가 언제 일어났는지 관심도 없는 인구가 절반을 넘는다는 현실을 반영하듯 이렇다 할 글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아무리 부인해도 대한민국은 엄연히 정전 상태의 불안한 국가다. 언제든지 전쟁이 재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더이상 없다고 안심할 만큼 국제 정세는 안정적인가? 전쟁 억제를 위한 국가 안보는 완벽한가? 전쟁 재발에 대한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6.25 남침의 당사자인 북한 지도부가 아직도 적화 통일 전략을 고수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북한 지도부가 전쟁을 다시 시작해도 얼마든지 북한 지도부를 옹호하는 세력이 남한 내에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북한 지도부의 전쟁 재개 의지에 전력을 보태는 세력은 남한의 자생 좌파다. 자생 좌파의 존재를 대내외에 과시한 가장 주목을 끄는 사건이 대법원에서 위법으로 판결된 강정구의 6.25는 통일을 위한 내전이라는 주장이다. 6.25는 강정구의 주장대로 통일을 위한 내전인가? 통일은 과연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통일(統一)이란 “나누어진 것들을 합쳐서 하나의 조직, 체계 아래로 모이게 하는 것”으로 국어사전에서는 기술하고 있다.

사전이 그렇다고 분단된 영토를 하나의 조직과 체제로 합치려는 모든 시도가 통일은 아닐 것이다. 한반도 통일이란 “남과 북으로 갈려 있는 우리 국토와 겨레가 하나로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통일인가? 통일이기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필요조건인 ‘누구’는 겨레(민족)이다. 한반도에서의 민족은 무엇인가? '민족 통일'이라는 미명 아래 외세를 끌어와 전쟁을 일으켜도 용납되는 그런 민족이 존재했었는가?

중국 정부가 아리랑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데 조선족이 앞장 섰다고 한다. 한국 정부의 무관심을 질타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한국 정부가 무관심하다는 이유로 중국 정부의 문화재 지정을 지원하고 환영하는 사람들을 같은 한민족이라고 볼 수 있을까? 조선족이 ‘우리나라’로 지칭하는 나라는 한국이 아닌 중국이다. 아리랑 사건은 '같은 정치제제 아래서 이익을 공유하는 결사체를 추상화한 개념일 뿐'이라는 민족의 허구성을 드러냈다.

1950년 북한 지도부에게는 허구적이고 만들어진 민족 개념조차도 없었다. 북한 지도부에게는 거추장스런 민족 대신 소련군 극동군 캠프에서 훈련 받은 김성주라는 소련군 대위와 스탈린 일국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이데올로기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1950년 6월 25일의 전쟁은 일국 사회주의를 한반도에 실현할 대리인이자 소련 괴뢰인 김성주를 비롯한 북한 지도부에 의한 이념 대리 침략이다. 강정구는 분명한 사실조차 왜곡했다.

맥아더에 대한 짝사랑, 더이상 적절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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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7 10:55 강정구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unikorea@cvnet.co.kr

강정구의 한심한 역사의식

이 민족 비극의 원조인 38선은 미국이 이미 45년 7월 중에 계획을 세웠고 최종 획정은 8월 11일 러스크라는 중령이 미 국무성 한 구석에서 지도로 확정지었다. 우리 조선사람 누구와도 상의 한마디 없이 또 연합국 누구와도 상의 없이 독단으로 결정했다. 베트남 역시 16도 선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지리적 분단을 결정하고 자행했다.

미군 주둔이 분단 지속의 원인이 아니라 전쟁으로 인한 분단이 미군 주둔 지속의 원인이다. 강정구의 주장은 명백한 인과의 오류다. 한반도 분단의 복잡한 역학 관계는 외면하고 일개 미군 중령이 ‘자를 대고 38선을 그었기’ 때문에 분단이 되었다는 거친 수사는 술 취한 사랑방 한담으론 적당할지 모르나 ‘땅이 있으라 하시매 땅이 생겨났다’는 종교적 비의만큼 황당하다. 전후의 한반도 분단의 역사는, 길에서 넘어지고도 튀어나온 돌뿌리를 용서하는 강정구의 달관한 듯한 태도로 뱉어내는 음모론보다 훨씬 복잡하다.

소련이 수천만명의 희생을 내면서 독일군을 묶었기 때문에 미국은 태평양에서 일본군과 싸울 수 있었다. 미국은 소련에 대가를 주어야 했으므로 소련의 정책 중심이 한반도가 아닌 만주였다는 분석은 미국이 한반도 전역을 점령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사이판 같은 작은 섬에서도 엄청난 희생자를 낸 미국은 관동군의 군세를 과대 평가할 수밖에 없었고, 대일전에서 소련의 역할을 기대했다. 소련이 손쉽게 한반도에 개입한 원인이다. 일개 미군 중령이 마음대로 38선을 그었다는 주장은 컵이 떨어진 자리만 쳐다보는 아기처럼 유치하다.

3조 주민은 본관 및 본관의 권한 하에서 발표한 명령에 즉각 복종하여야 한다. 점령군에 대한 모든 반항행위 혹은 공공안녕을 교란케 하는 행위를 감행하는 자에 대해서는 용서 없이 엄벌에 처할 것이다(All persons will obey promptly all my orders and orders issued under my authority. Acts of resistance to the occupying forces or any acts which may disturb public peace and safety will be punished severely).(맥아더 포고문)

조선인민들이여! 붉은 군대와 동맹국 군대들이 조선에서 일본 약탈자들을 구축하였다. 조선은 자유국이 되었다. 조선사람들이여 기억하라! 행복은 당신들의 수중에 있다. 당신들은 자유와 독립을 찾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죄다 당신들에게 달려 있다. 조선사람의 훌륭한 민족성 중 하나인 노력에 대한 애착심을 발휘하라. … 해방된 조선인민 만세!(치스차코프 포고문)

식민지 총독과 같은 점령군 모습의 맥아더와 인자한 소련군 사령관 치스챠코프의 포고문에서 드러난 차이가 점령정책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는 강정구의 젖비린내 나는 역사 인식은 희극을 넘어 차라리 비극이다. 미국은 처음부터 군정을 통해 직접적인 점령정책을 편 반면 소련은 자기들이 직접통치행위를 책임지는 군정이 아니라 조선인자치정부 성격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통해 간접적인 점령정책을 폈다는 미국 군정과 소련 민정 비교는 논파된 지 오래다. 그러나 술 취한 사람은 좀처럼 자신이 술 취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제 보은론을 본질적으로 따져보자. 만약 미국과 맥아더가 자기들 멋대로 한반도를 38도선으로 두 동강 내지 않았다면 우리가 민족분단과 전쟁이라는 비극과 형극을 겪었을까? 만약 6·25라는 통일 내전에 외국군인 미국이 사흘 만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전쟁피해가 일어났으며 지금까지 분단되는 비극이 지속될까?

6.25 이후의 분단은 강정구가 미국의 전쟁 개입을 비난하는 또다른 이유다. 그러나 강정구의 인식은 분단 자체에서 머문 채 분단 이후의 변화는 외면한다. 분단 자체가 아니라 분단 이후의 변화를 문제 삼는다면 인권과 생존이 위협받는 현재의 북한의 참상도 미국이 개입해야 할 이유다. 분단 이후의 북한의 참상은 김일성이 남침을 하지 말았어야 할 이유이며, 북한의 참상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추상적인 통일론에 집착하는 남한의 자생 좌파는 정전 상태의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해도 북한 지도부를 옹호할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6.25전쟁은 통일전쟁이면서 동시에 내전이었다(물론 외세가 기원한 내전). 곧 당시 외국군이 한반도에 없었기에 집안싸움이었다. 곧 후삼국시대 견훤과 궁예, 왕건 등이 모두 삼한통일의 대의를 위해 서로 전쟁을 했듯이 북한의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었다.

강정구의 역사관은 사물을 직선적으로 해석하며 외관만으로 양화하는 도구적 이성의 위험성을 드러낸다. 강정구는 후삼국의 영토 분쟁을 피상적 통일로 기호화했을 뿐이다. 중국 조선족이 아리랑을 중국 국가 문화재로 지정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 만들어진 개념으로서 허구적 민족의 실체라면, 후삼국에서 민족이라는 의식이 있었다는 증거를 찾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찾는 것보다 어리석다. 강정구가 '통일'이라는 기표에 '적화'라는 기의를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민족 통일'은 적화 후의 북조선 인민독재라는 살아있는 지옥이다.

강정구 류 용공 좌파의 위험성

통일에 대한 후삼국인과 20세기 한반도인의 인식이 어떻게 다른지 치밀한 점검이 선행되어야 한다. 후삼국 시대와 20세기의 전쟁의 양상이 창칼의 고대와 대량 살상 무기를 동원하는 현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20세기 한반도 거주민이 평화 통일을 외치는 이유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현대전의 비참함을 알기 때문이다. 1950년 소련의 괴뢰인 북한 지도부의 침략이 통일 전쟁이라는 강정구의 논리 대로라면 남과 북 어느 쪽에서 지금이라도 먼저 무력 통일을 시도하더라도 얼마든지 용납된다는 듣기에도 끔찍한 주장이다.

맥아더를 6.25 전체를 규정하기 위한 약한 고리로 삼는 것도 6.25를 미국에 의한 비도덕적인 제국주의 전쟁으로 매도하려는 좌파의 전략이다. 맥아더는 6.25를 규정하는 전체가 아니라 복잡한 요소 중의 하나일 뿐이다. 노근리를 양민 학살로만 파악하는 것도 복합적인 전쟁 양상을 외면하여 북한 지도부를 옹호하려는 검은 전술일 뿐이다. 민군과 피아를 구별할 수 없는 조건에서 벌어진 불가피한 사건은 노근리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에서 산발했다. 노근리는 북한 지도부의 침략으로 인한 무수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의 하나였다.

사물이 정명을 얻으려면 이름에 맞는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세계 속의 존재(dasein)인 민족과 통일 대상인 민족을 어떻게 구분하나? 6.25가 통일 전쟁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민족 통일을 위한 내전이 아니라 일국 사회주의를 위한 소비에트 괴뢰 정권의 침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6.25는 전쟁이 아니라 사변이라는 종래의 시각이 오히려 신선했다. 북한 지도부의 침략이 통일 전쟁으로 정당화된다면 남한의 무력 통일론도 정당화되며 흡수통일론도 거부할 이유가 없다. 역사를 통감이라고 하는 이유는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