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새끼가 된 정치, 쥐그림이 된 예술 일반비평집

‘G20 포스터 쥐그림’ 공안사건 만드는 “알음다운 국격”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679
2010년 11월 16일 (화) 13:24:26 김완 기자

쥐그림으로 G20 정상회담 포스터를 훼손한 대학강사를 조사하려는 경찰을 ‘막걸리 국보법을 되살린다’는 논평으로 비난한 민주당이 활개치는 대한민국 정치권이야말로 한강의 기적이다. 대한민국 정치권은 처음부터 바보들만 끌어 모으는지 아니면 정치인이나 국회의원이 되면 전부 천치가 되는지 의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시시때때로 터져 나오는 성추문이나 보온병 따위의 얼빠진 정치 멘트에 듣는 사람이 먼저 쥐구멍을 찾고 싶어진다.

민주당이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받는 길은 간단하다. 민주당이 쥐그림 강사를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고 치자. “표현의 자유를 일탈하여 국가원수를 모독하는 짓은 어떤 경우에도 용서할 수 없다. 더구나 어떤 개인의 신체적 특징을 비웃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그때 민주당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지지 정당의 의연함에 가슴이 뿌듯하고 당당해질 것이다. 반대로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민주당의 성숙함에 놀라고 정권 재창출에 위기를 느낄 것이다.

[논평]낙서를 두고 ‘막걸리 국보’를 되살린다?
[출처]민주당 브리핑/논평 2010. 11. 16 재작성자 조배숙
http://blog.naver.com/bs_cho/50099796372

민주당은 논평에서 “대한민국을 쥐고 흔들던 G20 정상회담은 끝났지만 후유증은 남았다… G20 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경찰은 대학강사 등 5명이 G20 홍보 포스터에 ‘쥐’를 그려 넣었다고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일이 있었다… 단순히 그라피티 아트를 이해하지 못한 문화적 소양부족이라고 보기에 구속영장은 과해도 너무 과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을 쥐고 흔드는’ G20이 못마땅한 민주당의 문화적 소양이 그렇게 높은 줄 예전에 미쳐 몰랐다.

그라피티(graffiti)란 ‘긁어 새기다(graffito)’라는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낙서를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흐름이다. 낙서가 예술이 되려면 정통 예술을 뛰어넘는 예술성이 더해져야 한다. 그라피티의 원조인 장 미셸 바스키아의 1981년도 작 <무제-붉은 남자 untitled-Red Man〉이다. 여기에 어떤 개인의 신체적 특징을 조롱하는 정치적 비열함은 없다. 특정한 개인의 신체적 특징을 비웃는 행위가 ‘흑인은 야만’이라는 인종 차별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민주당은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달려드니 참으로 기가 막히다. 쥐그림 낙서에 30~40년 전에 사라진 막걸리 국보법을 되살린다면 세계가 웃을 것이다. 정부는 대한민국을 때아닌 ‘겨울 공화국’으로 몰아가려는 것인가. G20으로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한다”던 정부가 진정 국격을 따진다면, 쥐낙서에 대한 대응도 품위 있게 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전직 대통령의 신체적 특징을 조롱하며 웃자는 연극 행위에 품격 있는 민주당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익히 알고 있다. 개인의 신체적 특징을 놀리는 단순한 조롱과 비웃음은 결코 예술이 될 수 없다.

노벨상에 빛나는 김대중 패러디를 구글에서 ‘김대중 오리’로 검색해보았다. 글은커녕 이미지조차 뜨지 않았다. 노무현은 어떨까? ‘노무현 개구리’라고 검색했더니 역시 없었다. 거울을 보는 그림 하나가 고작이었다. 패러디에 어울리지 않는 직설적 표현은 지웠다. 반대파들까지 존경해서 패러디가 없었다고 말하면 위대한(?) 김대중이나 노무현에 대한 모독이다. 군복 코스프레라고 놀림 당하는 군복 시위하는 할배 세대들이 점잖았을 뿐이다.

할배 세대가 컴퓨터를 몰라서 '그라피티 선전술'에 어둡다는 말은 말자. 컴퓨터 잘한다고 쥐새끼라고 욕하는 것은 그라피티에 대한 모독이다. 사람의 이름과 외모로 장난치는 짓이야말로 가장 비열하다. 이명박을 쥐새끼라고 놀리면 다른 정치인도 그렇게 해도 된다는 말이다. 노무현을 줄기차게 패러디하던 조선일보 만평가 신경무가 죽자, ‘잘 뒈졌다’고 하는 인간까지 등장했다. 그건 리영희에게도 똑같이 ‘잘 뒈졌다’라는 말을 해도 된다는 말과 같다.

G20 ‘쥐그림’ 풍자 대학강사 “나의 배후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1171024501&code=940202
디지털뉴스팀 손봉석 기자 입력 : 2010-11-17 10:24:50 수정 : 2010-11-17 18:35:45

쥐그림 작가는 쥐가 “거대한 권세나 많은 부를 추구하는 권력에 대한 탐욕, 건강한 시민의식을 갉아먹는 병균을 옮기는 사람들, 특정인이 아닌 어떤 영혼의 상징적 표현”이며 “(낙서는) 단순한 재물손괴인데 조직적 계획적인 반정부, 반국가적인 행위로 규정하는 것이 북한이나 중국의 모습하고 겹쳐진다”고 했으니 작가는 단순한 손괴을 그라피티 예술이라고 추켜세워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면서도, ‘웃자고 한 일’이라고 놀려먹는 민주당에 항의해야 한다.

쥐그림 작가처럼 ‘사회의 거대한 권세라든가 많은 부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권력에 대한 욕망이나 탐욕, 우리의 건강한 시민의식을 갉아먹는 병균을 옮기는 모든 사람들, 특정한 누군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영혼의 상징적 표현으로서 ‘단순한 재물손괴’ 정도로 그라피티 한다면 아래의 그라피티는 어떨까? G20 정상회담 쥐그림보다 정치적인 것 같지는 않다. 정치적이면 또 어떠랴? 위대한 남북 화해주의자의 속마음이 적나라하게 보이지 않는가?

정치의 연극성 소말리아의 해적
by : 이라영 2011.02.01 http://hook.hani.co.kr/archives/21237

인터넷에서 어떤 미술학도의 “G20 포스터에 쥐그림을 그려 넣은 한 미술대학 강사가 기소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그냥 웃음만 나왔다. 포스터 십여 장의 ‘훼손’을 담대하게 넘기지 못할 정도의 새가슴으로 정부는 어찌 지금까지 전쟁 운운했는지 모르겠다. 힘 쓸 곳을 찾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소말리아 해적 소탕에 유난히 공을 들이고 있다.”라는 글을 읽었다. 쥐그림이 ‘훼손’이라면서 금방 ‘예술’이라고 말을 바꾸는 뻔뻔한 이중성은 삼류 코미디다.

















나치의 공식작가로 활동했던 조각가 아르노 브레커(Arno Breker)의 작품 <복수자> 위에 화가 빌리 바우마이스터(Willi Baumeister)가 ‘낙서’한 것이다. 아르노 브레커는 강한 남성적 근육을 강조하여, 엄격한 사회적 위계질서를 찬양한 히틀러의 중세시대의 예술양식 취향에 동조했다. 히틀러는 전쟁을 통해 민족의 구원을 이끄는 중세 기사나 십자군으로 묘사되었다. 위기의 순간일수록 영웅적 지도자를 바라는 대중심리를 파고드는 선전미술이다. 빌리 바우마이스터는 나치 제국을 조롱하는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것이 글쓴이의 의도로 보인다.

어린이들 장난이 지나치다
http://news.suwon.ne.kr/main/section/view?idx=354412
등록일 : 2010-02-07 17:05:49| 작성자 : 시민기자 이영관

수원 효원공원의 어머니상에 그려진 수염 그라피티다. 철없는 아이들의 짓이라고 폄하하지 말라. 어머니도 아버지처럼 권위를 가지라는 염원에서 수염을 그렸을 수도 있으니 어린이의 순진무구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훌륭한 그라피티가 아니겠는가? ‘음경에 낙서’하는 빌리 바우마이스터의 행위가 그라피티 예술로 인정된다면 이건 어떨까? 누군가 김대중의 동상에 오줌을 갈겼다. 먼 후대에 오줌 자국이 남아서 멋있는 추상화로 변했다. 누가 그걸 예술이 아니라고 모독하겠는가? 민주당의 주장대로라면 오줌 자국도 그라피티다. 그래서 말한다. ‘어느 정도껏 하라’고…

낙서도 예술이라던 글의 필자는 소말리아 해적 소탕을 ‘대중 매체가 발달함에 따른 파시즘의 연극성’이라면서 ‘유명 연예인이 해병대에 지원한다고 9시 뉴스에 불러 모시기’라거나 ‘ ROTC 여군 훈련은 전쟁 준비 이미지를 생산하는 선동’이라 했다. 급기야 “소말리아의 해적들이 아부다비 왕세자의 전용기로 한국에 모셔진다고 주말 내내 떠들썩”한 것을 ‘연극’이라고 했다. 낙서를 예술이라고 강변하더니, 국민의 생존이 연극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때로는 그라피티도 필요하다. 그러나 낙서나 그라피티를 예술이라고 주장하려면 정통 예술을 초월하는 보통 이상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움베르토 에코는 키치(싸구려 예술)의 조건을 ‘양심을 속이는 문화적 알리바이’라고 말했다. 아래의 정치만평을 보자. 무능한 강만수 경제정책과 그것을 음지에서 거짓말로 비꼬는 미네르바, 미네르바에 대한 대중의 맹신이 담아낸 훌륭한 비판이요, 그라피티요, 만평을 넘어선 예술이 아니겠는가?


그런 것은 그런 것이고,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낙서는 낙서일 뿐 그라피티가 아니다. 더구나 특정인의 신체적 결함을 조롱하는 행위는 결코 그라피티 예술이 될 수 없다. 쥐그림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명백한데도, '어떤 영혼의 상징적 표현'이라며 양심을 속이는 비겁한 영혼들 때문에 정치는 그렇게 말하는 인간을 놀려먹는 음흉한 쥐새끼들의 천국이 되고, 그런 불쌍한 영혼들이 예술이라고 부르는 낙서는 정치에 이용 당하는 쥐그림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