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은 어떻게 변신하며 살아가는가 한국현대사

   
▲1950년 7월 2일 북괴군 치하 제1호 인민재판을 받는 김팔봉(양복)과 이영환(모자)

1950년 6월 28일 북한 공산군이 기습 남침으로 서울을 강점하자 미쳐 피난을 하지 못했던 서울시민 중에 을지로에서 인쇄소 애지사(愛智社)를 경영하던 소설가 팔봉(八峰) 김기진이 있었다. 그는 세종로 부민관(지금 서울시의회) 앞에서 보위부 앞잡이인 소위 가두 특수대에 끌려 나와 인민재판을 받았다. 평소 거래가 있던 영락연판소 직공이며 남로당 중구 출판노조원이던 노동운이 검사를 자칭하며 읽어 내려간 죄목은 다음과 같았다. “반동분자 김팔봉은 갖은 반동적인 행동으로 민족을 팔고 동포들을 배신하면서 인민을 거역하는 글을 써 왔고 최근에 와서는 공화국이 내린 자수권고에 불응하면서 반동행위를 계속해 온 악질입니다.”

노동운이 동원된 군중을 보고 외쳤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악질을 살려야 옳습니까! 죽여 버려야 옳습니까!” 그러자 군중 속에 숨어있던 아지프로(선전원 агитпроп)들이 제각기 소리를 지르며 “죽여라, 반동은 없애 버려야 한다.”라고 호응했다. 서울옾셋공사 인쇄직공이던 자칭 재판관 이영기가 다시 물었다. “여러분 어떻게 죽여야 합니까!” 프락치들이 외쳤다. “때려 죽여야 합니다.” “그러면 인민의 이름으로 반동분자 김팔봉에 대한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그러자 김팔봉은 “이 후레자식 놈들아! 죽이려면 어서 죽여라! 이 천벌을 받을 만행을 기억해 주십시오. 여러분!” 자칭 검사 노동운이 타살을 구형하자, 재판관 이영기는 타살을 언도했다. 그러자 프락치들이 달려들어 김팔봉에게 매질을 가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팔봉은 얼굴과 온몸에서 피를 쏟으며 죽은 시체가 되었다. 인민재판자들은 시체운반자들을 남겨 놓은 채 사라졌다.

시체운반책들은 머리가 덜렁거리는 김팔봉의 시신을 서대문 근처 개천가에 버리려고 끌고 갔다. 이미 이성을 잃은 시체운반책들은 김팔봉의 이빨을 빼려고 했다. 인민재판을 할 때 백금으로 해 넣은 이빨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빨을 빼는 놈이 중얼거렸다. “아니 아직 살아 있나 봐?” “살기는 뭘 살아? 누가 보면 안되니 빨리 해!” 그래서 이빨 다섯 개가 뽑혀 나갔다. 그 후 김말봉은 신음소리를 듣고 지나가던 주민에 의해 발견되어 리어카에 실려 백의원에 옮겨져 겨우 목숨을 이을 수 있었다. 부러진 갈비뼈 사이에서 김팔봉이 자기 손으로 구더기를 훑어내며 버틴 끝에 모진 생명을 건진 것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52년 4월 김팔봉은 이영기가 미 해병 24사단에서 노무자로 잠복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고, 비밀리에 동대문경찰서 사찰계 강정화 경감에게 알려 수사가 개시되었다. 경찰이 이영기를 찾아가자 이영기는 ‘그런 일이 없다’며 딱 잡아떼었으나 김팔봉이 나타나자 “아니 당신이 어떻게 살아났느냐”며 말을 잇지 못하고 수갑을 받았다.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살아서 나타나자 이영기도 너무 놀란 나머지 엉겁결에 죄를 자백하고 말았던 것이다.

6월 12일 김팔봉 인민재판 사건 언도공판이 열렸다. “소위 인민재판 재판장 이영기, 검사 노동운, 아지프로책 서명수, 동 김복룡, 동 아지프로 현장책 오세용, 시체운반책 김복룡 이상 피고인들은 1950년 6월28일 북괴의 서울 강점과 함께 남로당 극열분자로서 북괴의 침략노선에 동조 부화뇌동하면서 소위 인민재판이란 불법적이며 비인도적 수단으로 김팔봉 등 1명에게 무고한 죄명과 허위 날조된 협의를 씌워 다중(多衆)이 지켜보는 가운데 불법적인 사치(私恥)를 자행한 자들이며 (중략) 본 주심 판사는 피고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하여 적 치하 난동자들에게 참된 법의 두려움과 인간 양심의 소중함을 깨우쳐 주는 하나의 역사 실증으로 삼고자 합니다.

(主文) 소위 인민재판장 이영기, 동 검사 노동운 사형, 동 아지프로책 서명수 징역15년, 현장책 오세용 징역 10년, 동 아지프로 김복룡 징역3년, 시체운반책 김복룡 5년 이상” 그렇지만 자유 민주주의는 사람을 때려죽이는 공산당보다는 모질지 못했다. 이들 중 대다수가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장기형에서 단기형으로 감형되어 대한민국 사회에 스며들어 살아갔다.

공산 적괴 치하에서 서울을 휩쓴 인민재판과 같은 잔악 행위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각양각색으로 자행되었다. 평소에는 순수했을지 모르나 세상이 바뀌자 지옥의 사자로 돌변했던 남로당원들의 후손들은 지금 과연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오늘 우리 주위에는 영락연판소 직공이며 남로당 중구 출판노조원이었던 자칭 검사 노동운이나 서울옾셋공사 인쇄직공이던 자칭 재판관 이영기보다도 더한 세상 뒤집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으며 진보지식인 행세를 하는 인간들이 살아간다. 과연 이들이 바라는 세상은 무엇일까? 이들이 바꾸려는 연방공화국에서 이들은 어떻게 변신하며 살아갈까?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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