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소동, 거짓말 할 자유와 거짓말 하지 않을 책임 언론사회집

미네르바의 무죄를 확정한 대법원 선고의 본질은 미네르바도 거짓말할 자유가 있다는 민주주의의 당연한(?) 허점을 확인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도 마치 미네르바가 정의의 수호자라도 된 것처럼 흥분하는 인간들이 있다. 미네르바에게도 거짓말할 자유가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미네르바는 대법원의 법률 판단이 확정되자 마자 승리자라도 된 양 의기양양하게 자신을 옹호했다. 미네르바는 자신이 부끄러워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정말 몰랐을까? 그가 제대로 민주주의를 배운 시민이라면 거짓말할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를 위해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할 책임이 더 컸음을 먼저 깨달았어야 했다.

미네르바를 고발한 전기통신법 47조 1항은 인터넷이 없던 1960년 대에 만들어졌다. 검찰도 분명 바보가 아니었을 텐데 사문화된 법률에 기대어 인지 수사를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검찰도 보이지 않는 권력의 피해자일 수 있으며, 고려대 법대 교수의 질타와 증언을 들으면서 자괴감에 부끄러웠을 것이다. 미네르바 소동은 애당초 법률 적용이 잘못되었으므로 대법원에서 검찰이 절대 승소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기획재정부의 허위사실 유포죄 고소나 강만수의 명예훼손죄 고소는 소송법적으로는 성립될 수 있었지만 승소 확률은 거의 없었다. 미네르바의 거짓말은 현행 법률로는 제재할 근거가 없었음은 너무도 명백했다.

인터넷에 거짓말 좀 올렸다고 체포한다면 유치장은 터져나갈 것이다. 법률 적용부터 인지 수사까지 무리로 일관한 검찰 기소의 뻔한 귀결이지만, 미네르바가 정의의 사도로 포장되는 것은 치졸하고 위험하다. 그는 대중의 심리를 이용했고 소시민의 신뢰를 왜곡했다. 그러므로 미네르바 소동의 본질적 교훈은 철저한 자기반성이다. 그런데도 진영에 따라 ‘거짓말을 할 자유가 인터넷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가 미네르바 소동이 던진 메시지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거짓말할 자유에 상응하는 책임의식 없는 기형적 사고의 소영웅에 자칭 지식인이라는 자들이 아직도 부화뇌동하는 현실이 그것을 반증한다.

지하철을 기다리던 소시민 김대동씨의 철부지 아들이 갑자기 불이 났다고 외치며 지하철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놀란 지하철 승객들이 통로와 계단을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엎어지고 자빠지는 대혼란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유산한 임신부까지 있었지만 다행히(?) 사람이 죽은 불행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김대동씨의 아들은 그것을 거짓말로 인식하지 못하고, 재미있는 장난 정도로만 여겼다고 말했다. 거짓말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힐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치 못했다고도 했다. 미네르바가 무죄라는 김대동씨의 태도라면 아마도 아들에게 계속 그런 스릴 있는 거짓말을 하면서 인생을 즐기라고 격려할 것 같은 불안함을 지울 수 없다.

법원 선고가 불리하면 법적 문제를 대중 선동으로 해결하려다가도 유리하면 찬양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바른 행태는 아닐 것이다. 법률로 처벌하지 못한 허위사실 유포자 미네르바에 열광하는 대중 성향은 신뢰가 붕괴된 인터넷 사회의 슬픈 허상이다. 다소 모자라더라도 사회규범을 준수하는 것이 사회혼란을 막을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강점이다.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제약은 자칫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데 더 큰 비중을 둔 사법부의 고뇌의 결정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사법부는 피고인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했다. 법률로 무죄이지만, 피고인 미네르바, 그는 책임 없는 거짓말쟁이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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